이희영, 『테스터』, 허블, 2022
* 쪽수: 272쪽
언젠가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과학자는 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고, 인문학자는 비관하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어도 제 기억으론 얼추 비슷한 얘기였어요. 저야 과학자도 아니고 인문학자도 아니니 저 말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듣고 보니 왠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하긴, 첨단 기술의 미래를 오로지 긍정적으로만 전망하는 인문학 연구가 얼마나 될까요.
미지의 대상과 조우했을 때 인간이 보이는 전형적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바로 호기심과 두려움이죠. 대개의 경우 두 반응이 혼합되어 나타날 텐데 그중 어느 한쪽 반응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집단이 있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인 차이를 보일 것으로 짐작되는 두 집단으로 아주 투박하게나마 비교군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까 <알쓸인잡>에서 언급된 저 가설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현상에 대한 반응의 측면에서, 과학자 그룹은 평균적으로 호기심이 앞서고 인문학자 그룹은 평균적으로 두려움이 앞선다'라고도 표현될 수 있겠죠. 실제로 그런지 밝히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겠고요.
이제 이야기의 세계로 눈을 돌려 봅시다. 알다시피 호기심과 두려움은 이야기의 세계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사의 굴곡을 만들어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계속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동력은 바로 이 두 가지 요소로부터 결정적으로 기인하지요. 사람들이 흔히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라고 부르는 개념의 실체는 이렇듯 호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일면 상반된 감정의 동시적 결합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희영의 『테스터』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과학의 미래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다분히 회의적입니다. 프롤로그는 이야기의 핵심 소재인 'RB 바이러스'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맥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레인보우 버드'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신비한 새가 인간에 의해 멸종되었는데, 200여 년이 흐른 뒤 인간이 이 새를 관광상품으로 삼기 위해 기술적으로 복원시키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한 겁니다. RB 바이러스란 이름도 레인보우 버드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죠. 당시 레인보우 버드의 복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기업의 부사장과 본부장은 모두 RB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몇 달 만에 죽었고, 그렇게 복원 사업은 폐기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지요. 『테스터』는 바로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열여섯 살 '마오'는 바깥세상과 타인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마오는 눈동자를 빼곤 온몸이 새하얀 알비노이고, 극도로 취약한 신체를 타고났기 때문에 무균실에 가까운 환경에서 지내야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환경 여건을 완벽하게 마련해 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마오의 할아버지는 달에 호텔을 짓고 화성에까지 관광사업을 확장시키려 하는 유력한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손자의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덕분에 마오는 '보보'라는 돌봄용 메이드봇의 도움으로 평생 안전하게 보호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것만으로 다 채울 수 없는 욕구가 있지요. 즉, 타인과 만나 교류하며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오가 지닌 결핍입니다. 심지어 그 결핍은 마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탐욕의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오보다 두 살 많은 형 '하라'가 나타납니다. 하라 역시 RB 바이러스 감염자로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왔지요. 마오와 다른 점은 마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알비노인 데 비해, 하라는 세상을 흑백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색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라의 몸에는 군데군데 멍이 들어 있지요. 그를 통해 마오는 RB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겪는 증상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과 하라가 마오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실시되는 임상시험의 대상자, 즉 인간 테스터라는 것 등을 추론해 냅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사실과 다르고, 그로써 이야기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경합시키며 의미심장한 결말로 나아가지요.
이야기는 시종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지나치게 큰 힘을 휘두르는 세계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마치 불길한 그림자처럼 작품 전체에 걸쳐 암울하게 드리워 있지요. 자기네 눈에 아름다워 보인다는 이유로 한 동물종을 멸종시킨 것은 인간이고, 그것을 다시 복원하여 돈을 벌려다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 것도 인간입니다. 그렇게 죄 없는 한 인간의 삶을 고통으로 밀어 넣은 것으로 모자라서, 이곳의 인간들은 화성 테라포밍 사업을 크게 벌이고는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민간인 선발대를 추첨하여 보내는 기만을 저지르고 있죠. 이러한 문제의식은 책의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기술 문명을 맹신하는 세상에서 인간들이 결국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10개의 한자로 표현하여 소제목으로 달아두었습니다.
이렇듯 어두운 전망이 서사의 밑바닥에 짙게 깔려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에필로그는 희망적입니다. 내내 사라진 것들에 대해 말하던 이야기가 종국엔 남겨진 것들로 막을 내리게 되는 건,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한 가닥 희망을 바라게 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요. 알 수 없지만, 전 그것이 찰나를 사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하고도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예측은 언제나 차고 넘치고 지구는 미래 어느 시점엔가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사는 동안에 희망과 애정을 품고 다음 장의 인생을 펼쳐보는 것이 어쩌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