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알렙이 알렙에게』, 해와나무, 2018
* 쪽수: 192쪽
최근 <사비 털어 사심 담아 만드는 주간아동청소년문학, 사사주아>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주마다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작품 몇 편을 골라 그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형식인데, 하나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 전문적 식견을 아울러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신간과 구간을 골고루 다룬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결정적으로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솜씨가 발군입니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도통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사사주아 시즌 1을 정주행하던 중 행성 테라포밍에 대한 짤막한 언급을 듣게 되었습니다. 듣자마자 최영희의 『알렙이 알렙에게』가 떠올라서 이참에 리뷰를 해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알렙이 알렙에게』는 지구인에 의한 외계 행성 테라포밍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SF 동화입니다. 이러한 시각 자체는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고 타당합니다. 지구인이 자기 삶의 터전을 시시각각 망가뜨리고 있는 현시점에 테라포밍을 덮어놓고 긍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인간종이 공유하는 보편 윤리가 대폭 수정되지 않는 한, 테라포밍은 결국 또 하나의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니까요.
그러나 이 말은 SF가 테라포밍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다루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테라포밍은 발상 자체로 굉장히 매력적이고 지적으로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이걸 이리저리 굴리고 만지작거리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지구인의 윤리적 책무를 덜 강조한 작품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는 거죠. 테라포밍은 장르적으로 점점 더 단단한 울타리를 갖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 울타리 내부의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충분한 개연성이 부여된다는 전제 하에―, 테라포밍을 <심시티>나 <문명>처럼 엔터테이닝하게 그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SF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윤리적 진화를 겪게 된 영장류를 상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윤리적 딜레마를 말끔히 소거한 행성 개조 프로젝트도 이론상으론 가능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도출되는 메시지가 기존의 익숙한 SF 서사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비해 특별히 더 참신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아요. SF의 독자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들이고, 지구를 망가뜨린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동참한 장본인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사는 동안 지구 탈출이나 행성 개조에 앞서 요구되는 윤리적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알렙이 알렙에게』의 무대는 '테라'라는 이름의 행성입니다. 지구는 오래전에 핵전쟁으로 멸망했고요. 마지막 인류는 지구를 떠나면서 자신들의 복제인간을 만들어 우주선에 태웠습니다. 자연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여 인류 문명을 이어가려는 계획이었겠지요. 그렇게 찾아낸 테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여러 측면에서 지구와 유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주 계획의 결정권자인 인공지능 '마마'는 테라 행성에 정착하기로 하고, 그곳에 '마마돔'이라 불리는 지구인 거주 구역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 왔습니다. 마마돔의 인구는 언제나 200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개체가 사망하게 되면 시스템은 곧 그와 꼭 같은 유전형질을 지닌 새로운 개체를 고속 배양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는 죽은 자의 이름을 물려받게 되지요. 이처럼 마마돔은 극도로 좁고 폐쇄적인 공동체입니다.
‘마마’라는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이곳 사람들에게 마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주인공 '알렙' 역시 마마돔 안에서 마마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자란 인물이지요. 이곳에는 ‘마마의 벽’으로 규정되는 강력한 금기가 있습니다. 마마돔의 인간들은 마마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합니다. 마마의 벽 너머의 지식을 추구하거나 전파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요. 마마는 돔 안에서 절대자의 권력을 행사하며 금기를 어기는 인간이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합니다.
여기서 ‘마마의 벽’은 마마돔 안팎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로서 가시화됩니다. 마마돔과 마마의 벽이 꼭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긴 한데, 읽다 보면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어쩔 수 없이 포개어지는 면이 있어요. 마마돔 밖으로 나서는 주인공의 여정은, ‘마마의 벽 너머‘ 세계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로서 그 고유한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알렙은 그토록 고대하던 사냥조로 선발되면서 돔 밖으로 나설 채비를 합니다. 드디어 바깥 세계로 발을 내디딘 첫날, 알렙은 마마의 벽에 가려져 있던 세계의 적나라한 진실을 목격하게 되죠.
마마돔에서 사냥조의 역할은 낯선 행성의 생태계를 탐색하며 테라포밍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고 돔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확보해 오는 것입니다. 단백질 공급원인 '메가테리오'는 이들의 가장 주요한 사냥감이지요. 하지만 알렙은 고대하던 첫 사냥에서 상상했던 것과 아주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들이 사냥이라는 명목 하에 공격성이라곤 전혀 없는 동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던 거예요. 실상을 알게 된 알렙은 사냥조의 지시를 거부하고 그 대가로 작전에서 배제됩니다. 이는 곧 알렙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진실에 다가서는 계기가 되지요.
이야기는 알렙이 잔혹한 진실을 처음 목격하는 순간부터 옳은 길을 판단하고 이를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매우 속도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꽤 많은 개연성의 고리가 뭉개지거나 헐겁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 점은 아쉬웠어요. 알렙은 사냥조에 배치되고 나서 맞은 두 번째 작전에서 사실상 인류 공동체의 향방을 결정지을 일생일대의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데, 아무리 신화적 장치를 동원한다 해도 이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죠. 주인공이 진실을 깨닫고 각성하는 과정도 급한 감이 있고요. 정해진 결말에 빠르게 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너무 정형화된 루트를 밟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아쉬운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이 작품이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에서 갖는 의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선 동화에서 행성 테라포밍이란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와 더불어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화두를 던지기 위해 시종일관 비판적인 견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테라포밍이라는 발상에는 물론 흥미로운 구석이 있지만 과연 지금의 인간이 그러한 발상을 우주 어딘가에 실제로 구현할 자격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이 물음은 지금도 동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류의 것이죠. 앞으로 또 어떤 동화가 이와 비슷한 물음을 던질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 물음이 이를테면 『알렙이 알렙에게』와 무관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