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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예찬하다

츠키카와 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7

by 달리

*스포일러 : 약함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제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제목을 듣고 강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품는다. 그러나 이 제목에 딱히 숨은 뜻은 없다. 췌장에 생긴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고등학생 사쿠라(하마베 미나미)는 그녀 자신이 '친한 친구'라 부르는 조용한 성격의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에게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제목의 의미는 그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췌장에 병이 있는 사쿠라가 다른 누군가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것은, '병을 극복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네 안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네가 되고 싶다'는 선언이다. 이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역시 '사랑'일 것이다. 영화에 흐르는 주된 정서는 사랑이다. 아무래도 제목만 듣고 쉽게 유추하기는 어려운 정서라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시종일관 삶을 예찬한다. 특히 사쿠라에게 삶이란, 선택을 의미한다. 잘 안 어울려 보이는 사쿠라와 하루키가 만나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사쿠라의 표현에 따르면,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두 사람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만들어낸 사건이다. 삶이란 이렇듯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걸어가는 긴 여정이다. 사쿠라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떠난 뒤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하루키에게, '네 덕분에 사쿠라는 마지막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는 흔히 죽음의 형식이 삶의 내용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영광스러운 장례는 빛나는 삶을 기념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은 비극적인 삶을 애도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쿠라를 기억하는 방식은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낸 빛나는 순간들에 집중함으로써 짧았던 삶에 경의를 보낸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대하는 자세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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