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웹, <리빙보이 인 뉴욕>, 2017
*스포일러 : 중간
영화에서 토마스 웹(칼럼 터너Callum Turner)은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이 '영혼을 잃었다'고 말한다. 토마스에 따르면 뉴욕의 거리에는 더 이상 열정도 낭만도 없다. 거리에서 사라진 예술은 어떤 고정적인 형식을 띤 채 갤러리에 '전시'되고, 젊은이들의 사랑도 빗속의 외침처럼 극적으로 '영화화'된다. 하지만 그것은 거리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 중 전형적이라 여겨질 만한 것들을 추상하여 만들어낸 '모방'일 뿐, 진정한 예술은 될 수 없다. 이것은 예술이 본질을 다루기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의 단면을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것을 비판한 플라톤의 관점과 닮아있다. 영화 초반, 토마스는 이웃 제랄드(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에게 미미(키어시 클레몬스Kiersey Clemons)와의 '플라토닉'한 관계를 언급한다. 미미와의 관계는 열정이나 낭만적 정서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토마스가 여기(플라토닉 러브)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속해 있는 공간에서 예술은 더 이상 살아 움직이지 않으며, 예술적 낭만과 동떨어진 인생은 지루하게만 여겨진다.
토마스는 미미를 짝사랑하지만, 미미는 토마스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처음에 토마스는 미미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남자로 그려지는데, 이것이 토마스를 더욱 볼품없어 보이게 만든다. 미미의 입장에서 보면, 토마스는 선택하지 않아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도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 없다. 영화 초반, 제랄드가 토마스에게 하는 조언은 관계의 이런 보편적인 성질을 아주 영민하게 짚어낸다. "그녀가 너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두려운 상황을 만들어야 해. 바로 네가 없는 상황이지." 결국 토마스가 관능적인 여인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Kate Beckinsale)를 만나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후로 미미의 태도는 달라지게 된다.
조한나는 자신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그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이단(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과 토마스를 모두 매료시킨다. 둘은 부자지간이며, 이 때문에 고민하는 토마스를 두고 조언자 제랄드는 인생의 '짜릿함'을 역설한다. 스스로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제랄드는, 토마스가 지루한 일상보다 진정 그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삶을 채울 수 있도록 돕는다. 아버지의 내연녀와 사랑에 빠져 혼란스러워하는 토마스에게 제랄드는 묻는다. "그런데도 네 인생이 지루하다는 거야?"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 로맨스(혹은 불륜)를 형성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연출하면서도, 영화는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잃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제랄드의 조언이 그때그때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간결한 방식으로 생의 본질을 포착하여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제랄드라는 인물과, 그를 통해 표현되는 아포리즘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그럼에도 영화의 결론부에 배치된 스토리라인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제랄드와 이단, 그리고 토마스의 어머니인 주디스(신시아 닉슨Cynthia Nixon)의 사연은 직관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납득하기 쉽지 않다. 예컨대 어떤 사랑의 형식을 낭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단과 주디스의 오랜 부부생활을 별 의미 없는 것으로 눙치는 부분은 아마도 극도의 로맨티시즘이 불러일으킨 모순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는 흔치 않겠으나, 그토록 무의미하게 묘사되어도 괜찮은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은, '영혼을 잃은 도시' 뉴욕에서 자신의 존재(살아있음)를 확인하려 홀로 분투하는 청년의 삶을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낭만이란, 주로 황홀한 상황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행복감으로 연결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배신이나 불륜, 무책임과 불성실, 기존 규범에 대한 저항이나 규범의 파괴와 같은 부정적 주제까지도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는 너그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관한 오래된 질문도 실은 어떤 대상을 낭만적으로 바라볼지 아니면 금기로 설정할지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에서 보수적 규범과 익숙한 가치관은 시종 전방위적으로 파괴되는데, 이를 외설적이라 하여 금기의 선을 그을지, 진정 살아있는 예술로 보아 낭만의 영역으로 들여놓을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