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국상,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2017
* 스포일러 : 강함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원제는 <칠월과 안생七月與安生>이다. 원제 그대로 이 영화는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이다. 영화 속 두 인물은 서로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로 그려지며,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관계의 밀도를 더해나간다.
한편 영화의 원제 <칠월과 안생>은 극 중 등장하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소설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임칠월(마사순)'과 '이안생(주동우)'이라는 두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미완의 인터넷 소설 「칠월과 안생」은 어느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게 되고, 그는 소설의 작가인 칠월과 연락하기 위해 그녀의 하나뿐인 친구 안생을 만나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안생은, 소설 속 '안생'과 자신이 그저 동명이인일 뿐이라며 칠월이란 여자를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바, 소설의 작가는 사실 칠월이 아닌 안생 그 자신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친구인 칠월의 이름을 빌려 필명으로 사용한 것이다.
영화는 매우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했다. 인터넷에 연재 중인 소설 「칠월과 안생」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읽히며 다채로운 색감을 얻는다. 누군가에겐 상상으로 채워지고 누군가에겐 기억으로 재생되면서, 소설은 그때 그 시절 속의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즉 영화 <칠월과 안생>은 동명의 소설 「칠월과 안생」을 극 중의 도구로 삼아 두 인물의 삶과 내면을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연출되었다. 흔히 '액자식 구성'이라 불리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으나, 영화의 내러티브가 그 안에서 완결된 소설을 끝없이 연장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참신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이다.
이를테면 소설 속 칠월은 실패한 결혼식날 이후 어디론가 훌쩍 떠난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의 칠월은 아이를 낳고 사망한다. 칠월의 아이를 맡아 기르게 된 안생은 아이의 친부인 소가명(이정빈)에게 그간의 사실을 털어놓는데, 칠월의 죽음만은 끝내 숨긴 채로 소설을 완결 짓는다. 이로써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들의 삶은 소설과 다른 방향으로 계속 전개될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안생은 27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27살에 죽음을 맞게 되는 인물이 칠월인 것도 다분히 상징적이다. 영혼을 교류하며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다가가려 했던 두 사람이 결국 상대의 인생 그 자체를 자신의 안으로 가져와 온전히 함께 하겠다는 시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칠월의 죽음은 안생에게 소멸이 아닌 새로운 의미의 탄생이다. 내 몫으로 예정된 삶을 살다 간 칠월의 삶을 살아내야 할 책임은 이제 다름 아닌 안생의 몫이다. 결국 소설의 완결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장치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것은 사랑과 우정의 대립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주인공이 사랑 앞에 잠시 흔들리다 결국 소울메이트에게 돌아가는 뻔한 스토리로 파악하면 곤란하다. 그런 시퀀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칠월과 안생의 삶에서 사랑과 우정의 대립이란 실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그들이 함께 경험한 모든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삶이 사랑받을만했든 그렇지 못했든 관계없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온전히 의미 부여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안생과 칠월은 서로 꼭 맞는 사이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꽉 들어찬 존재였고, 그들이 곁에서 지낼 때나 멀리 떨어져 지낼 때나 그 의미의 밀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영화 초반 두 인물이 상대의 그림자를 밟으며 서로를 평생 곁에 두려 했을 때부터 이미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끈으로 이어져 떨어질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안생은 자신과 칠월의 이야기를 죽은 칠월의 관점에서 썼다. 마치 칠월의 영혼이 자기 안에 들어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심지어 오랜 기간 칠월의 연인으로 지냈던 가명조차도 안생이 칠월을 가장하고 쓴 소설에서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안생과 칠월이 서로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 소울메이트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둘은 때로 시기하고 때때로 미워하면서도 언제나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했다. 영화는 이처럼 누군가와 영혼을 나누고 교감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중하며, 동시에 그런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마음의 상태를 깊이 파고든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하나의 우주가 되기도 한다. 환희로 가득한 추억과 증오심으로 몸을 떨던 기억, 질투심에 잠못이룬 새벽과 그리운 친구를 말없이 안고 쓰다듬을 때의 시린 감동이 오랜 세월 후에도 여전히 소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내 삶 전체에 너무도 벅찬 의미를 선물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한 순간의 기억과 그때의 격렬했던 감정들이 쌓여 만들어진 한 사람의 의미를, 다른 한 사람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매우 서정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영화에서 시종 강조되는 바, 소중한 사람의 의미는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하며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의 총합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