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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09. 2024

리뷰에 대한 리뷰

<사사주아 53회 -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 편을 듣고

팟캐스트 ‘주간아동청소년문학 사사주아‘ -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 편이 올라왔어요.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의 기획자인 송수연 평론가의 기획 의도와 생각들을 짧게나마 들어볼 수 있어 좋았어요. 아래 링크에 접속하여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podbbang.page.link/Fp414YP1PwpMXs1A9


제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그리 길지 않고요. 최영희의  「지퍼 내려갔어」와 듀나의 「자코메티」에 대한 리뷰가 메인입니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제 작품 「기억의 기적」에 대해선 아쉽다는 평이 두드러지던데, 그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의적 감상보다 비판적 감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저한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 앞으로도 누군가 제 글에 대해 아쉬운 얘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맹목적 비난이나 조롱이 아니라면, 그건 정말로 고마운 일이거든요. 물론 호의적 감상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수우의 감정선이 일관되지 않아 공감할 수 없었다는 평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역량 부족이죠.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민하가 얼굴 수술을 받는 것이 정상성에 관한 대중의 편견을 강화하는 전개이고, 그래서 이 책의 기획 의도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게 이 이야기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지요. 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수술 이후 민하의 얼굴을 마주한 수우의 반응이 아주 뻔하고 지루한 유의 것이었다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말하지 않고 저렇게 평하는 건 그다지 공정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수는 있지만 최소한 깔아 둔 패는 다 공개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 장면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더라도 언급은 됐어야 해요. 그냥 수술받고 끝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별개로 이런 지적을 받았을 때 송수연 평론가의 대응은 저로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본인의 기획 의도에 맞지 않는 작품이 기획에 포함되어 책이 나왔다면 기획 자체가 실패한 거잖아요. 이렇게 중요한 지적에 대한 송수연 평론가의 대답은 ‘할 말 없음’이었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안일한 답변이었어요.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럴 거면 애초에 제 작품을 넣지 말았어야죠.


참고로 전 제 작품을 투고할 때 기획 의도를 듣고 거기에 맞춰 원고를 쓴 게 아니었어요.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한 거였죠. 그런 제 원고를 ‘곧 나올 청소년 sf 앤솔러지 기획에 넣고 싶다’고 한 건 출판사와 송수연 평론가였는데, 그때도 자세한 기획 의도는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 입장에서 저 코멘트는 적절한 해명을 기대할 만했죠. 네 명 중 적어도 송수연 평론가는 이런 사정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잖아요.


「자코메티」에 대한 유영진 평론가의 견해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이 작품에서 젠더갈등 코드를 읽어내는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한 가지 코드에 꽂혀 큰 그림을 놓치는 건 좀 다른 얘기예요. ‘최정호 캐릭터가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남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다른 방식(아마도 훨씬 더 온순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유영진 평론가의 코멘트는 저에겐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더 재미없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는 말로 들렸습니다.


「자코메티」는 죽어 마땅한 인물을 가차 없이 죽여버림으로써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그 ‘죽어 마땅한 인물’이 모두 남성인 게 그렇게 이상하고 불쾌할 일인가요. 이런 텍스트가 젠더갈등을 부추긴다는 논리는, 이를테면 ‘게임을 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말처럼 정교하지 못한 느낌을 줍니다.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상 아무 의미가 없죠. 이번 방송엔 급기야 ‘남혐’이라는 워딩까지 등장하더군요.


기획자 송수연 평론가는 책 말미에 표준과 정상성에 관한 화두에 물음을 던지고자 ’장르문학과 손을 잡았다‘고 썼는데, 이야기 속 남자를 몰살하는 정도의 장르성도 견디지 못해 튕겨나가는 독자들을 걱정하는 게 옳은 방향일까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문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문학은 신이 아니에요. 이미 반대편에 서기로 결심한 자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꿋꿋이 해야 하고, 작가와 평론가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말보다 더 날카롭고 발전적인 담론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도 거대한 현실은 언제나 둔하고 뭉툭하게 굴러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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