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by shadow

"오빠...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라고 하며 당황스러워하던 미스터 유의 얼굴에선 이후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고는 진전은 없다. 나도, 미스터 유도 더는 그 이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우리는 이전과 같이 누구나 잘 아는 오빠 동생 사이,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그래. 차라리 이것이 편하다.




미스터 유와 친해지게 된 건 대학 4학년이 되어 취업준비를 하면서부터 였다. 미스터 유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도 적어 가까이하기 힘든 타입이었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해지게 됐다. 무언가를 같이 얘기하면 진지하게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도 이야기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난 너무 내성적이어서... 사교성이 부족해서..."


하지만 학교에 미스터 유를 보러 온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함께 놀다 보면 과연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한지는 모르겠다. 동아리에서 방학 특집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는 묵묵히 운전을 하거나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센스 있게 잘 어울렸다.


난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이성으로 바라볼 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약간 저돌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윤도현과 같은 남자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고독스러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미스터 유와 대화를 하다 그와 내가 꿈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꿈은 국제기구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벽은 높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현실을 감안하여 대기업에 취업하고자 했는데 그 전략마저 미스터 유와 같았다. 학교에서 성적우수자에게 제공하는 대기업 프리패스권 같은 것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미스터 유와 내가 대상이 되었다. 미스터 유는 나보다 능력이 출중했기에 그걸로 대기업에 취업했고,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 인성검사에서 떨어졌다. 미스터 유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그때 이후로 나를 더 잘 챙겼다. 우리는 그렇게 자주 연락하고 또 친하게 지냈다.

미스터 유는 국제기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니며 국제기구를 준비할 만큼 열정이 넘쳤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수 없는 미래에 올인해야 할 정도로 미스터 유에겐 고난의 시간이 왔다. 그때 나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 학교에서 미스터 유를 만나게 됐다. 그때의 미스터 유의 축 늘어진 모습이란...


그런데, 그러고 얼마 뒤 미스터 유는 꿈에 그리던 국제기구 취업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곧 뉴욕으로 파견을 갔다. 미스터 유는 순식간에 자랑스러운 동문이 됐다. 나도 미스터 유가 자랑스러워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대학원 방학을 맞은 나는 나의 절친을 만나기 위해 뉴욕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미스터 유를 만나기로 했다.


미스터 유를 만나기로 한 곳은 젊음의 상징이자 자유의 상징. 유니온 스퀘어 거리다. 그곳에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대학생,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날도 화창하고 햇볕도 쨍쨍했다. 뉴욕의 젊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미스터 유가 오기를 기다렸다.


미스터 유가 등장했다.


미스터 유와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 내 옆에 나란히 앉은 미스터 유는 햇살에 비쳐 눈이 부셨다. 햇살과 미스터 유의 얼굴의 경계가 아름다웠다. 나는 눈부심에 눈을 찡그리며 미스터 유를 응시했다. 이럴 수가... 이렇게도 알던 사람에게 한눈에 반할 수 있는 건가? 나는 그 순간 미스터 유에게 반해버렸다.


처음엔 설마 했다. 하지만 이후 나도 가고 싶은 국제기구를 안내하며 소개해주고, 보트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도 보며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나는 미스터 유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스터 유가 좋아졌다. 성격이 급한 나는 이번에 한번 미스터 유를 쿡 찔러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미스터 유와 만나기로 한 맨해튼의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와인을 마시며, 기회를 노리다가, 나는 미스터 유에게 고백했다.


"오빠...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스터 유는 그 전과 다름없이 나를 챙겼다. 아니다. 어쩌면 미스터 유는 전보다는 나를 3% 정도는 더 챙겨주는 것 같았다. 나는 미스터 유가 조금 어색해졌다.


나도 곧 미스터 유와 유사한 직종으로 취업을 했다. 미스터 유가 다니는 곳은 아니었지만 해외 저 멀리에 있는 미스터 유와 업무적으로는 가까이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국제 경험 보다는 업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했다. 이직한 곳에선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계속 출근을 했다. 나는 업무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완전히 잊었다.


한국에 들어온 미스터 유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 소개팅 한 번 할래? 나도 나갈 건데, 네가 아는 내 친구들도 나와. 반은 다 네가 아는 사람들이니까 부담 없이 나와~"

그는 내성적인 성격의 나를 잘 이해하는 듯 배려하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이어서 또 근무를 하고 있었다. 미스터 유를 만날 생각에도 내 정신과 몸은 피로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오빠. 업무가 많아서 못 갈 것 같네요. 다음에 소개팅 말고 동아리 사람들이랑 같이 한번 봐요."




미스터 유는 그 소개팅에서 만난 연예인을 닮은 성형미인과 결혼했다.


나는 내가 가려는 길에 나보다 앞서 걸어가면서 그의 등만 바라보게 만드는 미스터 유가 운명인 것 같았다. 미스터 유는 앞서 걸으면서 자꾸 자기를 봐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날 소개팅을 나갔다면... 내가 전날에 밤을 새우지 않았다면... 내가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보다 더 가까워졌을까? 그의 결혼으로 미스터 유에 대한 그리고 나의 국제기구에 대한 꿈은 고이 접어 한켠에 묻어두었다.


미스터 유와는 아주 가끔씩 연락하고 지낸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선배보다도 멋있고 잘 나가는 미스터 유는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에 상처 받고 힘없는 루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 이 오빠가 이렇지... 여전히 내게 미스터 유는 잘나갔으면 하는 참 좋은 선배다. 미스터 유가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