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늘어지고 싶었던 일요일

나 혼자 살고 싶다 #1

by shadow

일요일 아침이다.

이번 일요일 아침도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다.

늦게 일어나 천천히 TV를 켠다.


잠시 후 아버지가 등장한다. 옆에서 TV를 보며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인다.

- 쟤가 누구 부인이지?

- 최태성이는 참 똑똑하네.

- 일본 놈들 저 나쁜 시키들.

- 저 새끼는 왜 나왔어?


대부분의 말은 못 들은 척한다.

딱 두 마디에 대꾸했다.

- 쟤는 누구 부인이 아니고, 연인입니다.

- 광복절 행사 사회를 힘차게 보고 있는 아나운서는 조우종이 아니라 배성재입니다.


잠시 후 등장한 엄마는 김치볶음밥을 열심히 만든다. 아버지도 나도 밥을 먹은 상태다. 엄마가 내게 밥을 차려주는 적은 1년에 딱 두 번, 명절 때뿐이다. 그 외에는 아들 밥상, 손자 손녀 밥상 차리기에 열중이다. 아들 가족이 휴가로 남해를 가자 아무도 먹지 않을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 만들더니 말한다.

- 김치볶음밥 먹어라~


나는 엄마 이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나의 전제에는 언제나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없다.

아버지는 지금 배부르다고 한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모에게 전화한다.

- 야! 언제 올 거야?


엄마에겐 세상 만만한 친구가 이혼한 이모1이다.

만만하고 말 잘 듣는 이모 불러다가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작당도 도모한다.

- 그럼 우리 집에 와서 김치볶음밥 먹어.


헉... 나는 오늘 하루 정말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는데, 이런 코로나 시국에 이모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는 것도 못 봐주겠는데 이제는 이모더러 집에 와서는 밥을 먹으라고 한다. 늘어지고 싶었던 이 휴일에.


그 사이 아버지는 방에서 혼자 들어도 될 휴대폰을 거실에 올려두고 교회 예배 생방송을 중계한다. 거실에 TV는 켜 둔 상태인데 더 크게 휴대폰으로 교회 예배 생방송 틀어놓고는 방송은 듣지 않고 또 다른 것을 하고 있다. 귀가 더 따가운 것 같다.


참다가 한마디 한다.

- 그럴 거면 뭣하러 켜놓고 있어?


아버지는 절대 수긍하는 법이 없다.

- 예배잖아. 들어야지.


듣지도 않으면서....

나는 벌떡 일어난다.

말해봤자 뭐하리. 피하자.

아무래도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화가 치밀 것만 같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엄마가 말한다.

- 너는 모자도 안 쓰고 나가니?

아버지도 보탠다.

- 모자 쓰고 나가!


나는 못 들은 척 자전거를 끌고 어디론가로 향한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이모1이 서 있다.

- 어디가?


갈 곳은 없지만 그래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니 어딜 가도 집구석에 늘어져 있는 것보다 낫겠다 싶다.

어차피 늘어져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참에 운동이나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