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알게 된 내 친구는 일본어를 전공했다.
그러더니 홀연 호주에 가서 대학을 다니고 호주에서 취업을 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해 호주에서 가정을 꾸렸다.
호주에서 아들도 낳고 집도 짓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얼마나 일본어를 못하는지 잘 아는데, 영어도 딱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그 실력이었다는 것을 잘 아는데, 가끔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만나면 호주식 발음으로 영어를 섞어 가며 말하는 친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친구는 그렇게 스스로 개척하고 새로운 곳에서 정착한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했고, 점점 호주 사람이 되어갔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을 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 만났다.
많이 늙었고, 천방지축이던 얼굴엔 의외로 수심이 가득했다.
자신감 넘치던 말투는 후회로 가득했다.
아버지가 암으로 인해 아프시니 이번이 어떻게 보면 아버지를 보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을 잃고 막내아들인 자신도 자주 못 볼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한다. 게다가 장인어른도 아프시니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며, 외동딸인 와이프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살자고 한단다. 그러니 친구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와이프를 위해서라도 호주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호주에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했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을 모두 부정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보니 후회된다는 것.
아버지 뻘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인데, 실패를 경험하고 스스로를 자책할 때나 할 생각인데, 내 친구는 아버지가 아프시고 장인어른이 아프시고 혼자 남을 어머니와 장모를 걱정하며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늙어서 부모님도 반려자도 없는 가운데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할 내 미래만을 걱정하고 무서워했는데, 친구는 본인이 호주에 있을 동안 남은 인생을 한국에서 홀로 살아갈 부모를 걱정한다. 철없어 보였던 내 친구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그만큼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오늘.
무엇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일까.
나의 치열했던 지난 과거는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덧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의 나는 빠르게 바로잡지 못한 짧았던 당시의 과거를 마음껏 후회하고 아파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젠, 우린, 현재의 나를 만든 모든 과거를 후회하기엔 너무 늦지 않은 걸까.
다가올 그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내 우선순위는 어디에 두는 것이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