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찾은 목표는 요즘 핫하디 핫하다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가보는 것이었지만, 이 근처에 오니 옛 추억에 기분이 좋아진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몇 분 내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 나는 최고의 직장생활을 했다. 리즈시절을 보냈다.
사무실은 이전을 해서 이제는 이곳에 아무도 없다. 연락을 한다고 한들 나올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기분이 들뜬다.
직장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진정한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었다.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 리즈시절로 귀결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로 만났던 이분은 나와 업무 결이 맞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소신이 있었고, 내가 지원만 잘한다면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윗사람 눈치를 보거나 외부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일을 인정해주고 나를 인간적으로도 아껴주었다.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몇 년에 한 번 만날까말까임에도,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이분을 존경하고 응원하고 있다. 진정한 '인간'이자 나의 '영원한 멘토'님은 이후에도 높이높이 올라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하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이분의 앞날을 먼저 예측하고 싶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내가 이분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은 지금과 같이 높은 위치에 있어서는 아니다.
아주 오래전 이분과 일을 하면서 좋았던 요소가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빛을 발해서 현재의 위치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사사로이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습이 깊이가 더해져 나에게는 희망이자 기쁨이 되었다.
- 아. 저렇게 소신 있게 직장생활을 해도, 이렇게 멋진 모습이 될 수 있구나.
- 이것을 알아주는 누군가는 결국은 있구나.
- 조금은 느릴 수는 있지만 결국 가장 강력한 빛이 되는구나.
'우리의 영원한 호프'는 이분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역시는 역시다.
나의 '영원한 멘토'로 모실 자격이 있다.
멘토님과 함께 겪어보지 못한 직장생활에서의 힘겨움과 고민들, 그리고 요즘 자주 들게 되는 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교차되며, 굳이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나는, 계동 방문을 했던 것을 핑계로 아주 오랜만에 먼저 연락을 드려본다.
농담 80%, 진담 20%를 섞어 요즘 사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농담 80%, 진담 20%를 섞어 나를 응원해 주신다.
보잘것없는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같다.
아, 행복하다. 매번 연락을 하고나면 행복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나는 한동안 계속해서 행복했다.
이분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에, 이분의 한결같음에, 그리고 나와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있음에.
그때가 내 직장생활의 리즈시절이었다.
나는 왜 그때가 '리즈'였을까.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끝날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던 것도 있다. 그래서 해피앤딩을 맞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장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는 것이 그때를 리즈시절로 만드는 것 같다. 리즈시절의 'legacy'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고, 여전히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리즈시절이 내게 오지 않았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업그레이드되고 변화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유지하고 있다는 것,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legacy의 요건이 아닌가 싶다.
계동도 멘토님도 같았다. 세월에 많은 것은 변했고,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가 입혀져 있다. 하지만 원래의 것은 그 느낌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여전히 계동은 내게 멋진 추억의 장소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