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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Dec 31. 2023

본질 추구에 대하여

하반기부터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나의 팀장은 '면팀장'이 됐다.

어떻게 보면 팀장직을 유지하려고 그동안 그렇게 나를 괴롭힌 것 같은데, 글로벌 에티켓도 없던 그는 명분도 불명확한 해외 출장지에서 '면팀장' 통보를 받았다.


나는 평가마저 C를 받게 된다면 팀장의 평가를 고의적, 악의적, 비합리적 평가로 판단하고 회사에 팀장이 내게 한 행동들을 모두 폭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 평가는 B여서, 팀장의 그간의 행태들을 그냥 이대로 물처럼 흘러 보내기로 했다. 대신 팀장과는 앞으로 영원히 같은 팀에서 업무를 함께 하지는 않기로, 한때 내 멘토였던 그를 앞으로는 인간적으로도 존중해 주지 않기로, 오로지 사무적인 관계로만 남기로 결심했다.   


면팀장 통보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팀장은 내년에도 본인이 팀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기소침해 있는 내 뒤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팀을 떠날 것 같냐고 묻고 다녔다고 한다.  팀장의 상사에게는 내가 팀을 떠날 것 같고 팀 업무도 많으니 내년도 인력 충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했다고 한다. 남들에게는 내 향후 거취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이것저것 말하고 다니는 과정 속에 단 한마디도 내게 의사를 물은 적이 없는 그는 역시 나의 팀장이 될 수 없다.   


사실 나는 팀장이 해외 출장지에서 면팀장 통보를 받기 전부터 그가 면팀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깊게 움츠러들어 있던 마음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팀장의 면팀장이 공식화가 되고나서 내 마음은 불편함이 10%, 홀가분함이 109%가 되었다. 그러니 99%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팀장의 면팀장 소식으로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팀장과 나의 거취를 물어왔다. 친한 몇몇 사람에게는 사실 나는 올해 팀장과 사이가 안 좋아 마음속으로 팀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고소하다는 식으로 팀장의 만행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나의 속내와 팀장이 내게 한 행태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유일한 동료 A는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섀도우님, 섀도우님 요즘 갑자기 표정이 너무 밝아졌어요. 그런데 조심 좀 해요.


이번에 팀장님이 면팀장이 된 것은 섀도우님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동안 괴로웠던 것이 조직개편으로 모두 해결됐고요.  


그런데 이제 그것이면 됐어요. 그만 말하고 다녀요. 팀장님이 섀도우님에게 한 나쁜 행동들이 결국 팀장님의 불행으로 다가왔듯, 섀도우님의 이런 기쁨은 어쩜 다시 역으로 큰 사건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요.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봐요."


A의 말이 맞았다.

팀장의 면팀장 소식은 씁쓸하긴 했지만 내겐 슬프거나 우울한 소식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나의 올해 목표였던 '팀장 떠나기'도 자연스럽게 성취가 가능하게 됐고, 또 어떻게 보면 내 입장에서는 내 눈앞에서 '권선징악'이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다행인 소식'이었다. 그러니 남들 눈에는 내게는 너무나도 기쁜 소식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면팀장이 되고 즐겁게 팀장에 대해 씹어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나도 그 무리에 휩쓸려 동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쩌면 동료 A의 눈에는 내가 앞장서서 신나게 팀장을 씹어대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팀장은 변함이 없고 점점 내 눈에 더더욱 꼴 보기 싫은 존재가 되었다. 면팀장이 된 후에도 그대로인 모습이다. 팀원들에게는 내가 특정 팀에 갈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내 거취에 대해서도 팀장은 단 한 번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원래 팀장이 떠들고 다니던 말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팀장이 떠들고 다니던 그 팀을 선택하게 됨으로써 팀장의 말은 사실인 것이 되었다.


팀장이 지금 팀을 떠난다고 했다면 나는 지금의 팀에 남는 것도 고려했겠지만, 그가 팀에 팀원으로 남겠다고 말했다고 해, 나는 팀을 옮기기로 했다. 이제는 그가 팀장이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기존 팀원들과 새로운 팀장을 욕하고 다른 팀 사람들을 욕하고, 째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감내할 수 없다. 그 앞에서는 함께 하하호호 웃어대고 친한 척을 하는 팀원들도 못 봐주겠다. 그러니 업무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애초에 팀장이 괴롭힐 때부터 생각했던 대로 내가 떠나는 게 맞다.


나는 여전히 팀장에 대한 응어리가 남아있고, 팀장이 내게 한 말들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업무를 해야 하는 이 시점에 있어 두려움이 크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것들을 맑은 모습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오염된 물 그 자체로 흘려보낸다면 A의 말대로 언젠가는 내가 그 물을 다시 마시고 고통스러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는 팀장보다 똑똑하진 않지만, 팀장보다 성숙한 인간이라는 믿음이 있다.

팀장보다 더 성숙한 인간으로서 이제는 정신 차리고, 팀장이 나에 대해 말했던 그 부분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신경 쓰고 보완하며 새롭게 사회생활을 해 나가야 할 때다. 그리고 여태까지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팀장 제안도 내년에는 받아들일 수 있도록, 리더가 되든 안 되든 나 스스로를 조금 더 리더로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할 그런 때다. 그래야 나는 보란 듯이 아주 우아하게 팀장을 이길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팀장과 함께 일을 하며, 그리고 내 주변의 리더들을 보며 느낀 것이 있다.

그 어떤 일을 하든, 그게 승진이든 직의 유지 등 상관이 없지만, 업무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업무의 본질을 잃고, 개인 욕심이 과해질 때, 결국 손에 쥔 것마저 초라하게 잃게 된다는 것.


멀리 떨어져서 보라는 동료 A의 말.

나도 어떻게 보면 잠깐의 분위기에 휩쓸려 본질을 잃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본질을 추구하자.

내 업무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걸 위해, 나 좋자고 혹시 타인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고 또 왜 해내야만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얼 우선으로 해야 하는가.

객관적으로 나를, 그리고 이제는 주변 상황도 함께 살펴보자.

그 중심엔 본질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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