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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Jan 03. 2021

사실이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잉글리시 컴플렉스

나는 TV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 영어로 된 방송을 많이 보곤 했는데 그것이 듣기 평가에 도움이 되었는지 적어도 듣기평가에서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거의 항상 만점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잘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있으랴! 내게는 그랬다. 결국 자연스럽게 영어를 좋아하고, 또 미국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도 다니고 싶지 않았던 꿈없는 대학생이 된 나는 어느순간부터 미국에서 사는 것을 로망으로 삼게 되었고 막연하게도 미국 유학을 목표로 종로 유명학원에서 무작정 토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주입식 교육으로만 생각했던 영어문법이 이렇게 체계적이고 재밌는 것이었다니! 나는 듣기에 이어 영문법에서도 흥미를 느끼며, 사교육 파워에 대해 실감하며 다시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포기가 빠른 끈기 없는 나는 결론적으로 유학을 가진 않았지만, 고등학교 이후 손을 놓았을 수도 있는 영어 공부를 다시하게 됐고 또 미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며 다시 영어 TV보기에 맛을 들였다. 그랬더니 전혀 토익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영어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끔 착각을 했던 때도 있던 것 같다.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분명, 나는 영어를 잘한다기 보다는 영어를 접하는 것을 좋아했다. 결국엔 영어 로망이 나를 영어로만 수업하는 대학원에 들어가게 했다.


국내에서 영어로만 수업하는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유학 대비 돈을 상대적으로 덜 들이고 영어로 공부하여 학위를 딸 수 있다. 외국인과 외국 스타일로 학습할 기회가 생긴다. 외국계 회사에 취업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다.


하지만 내가 적응하기 참 힘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영어였다. 다행히 대학교 때 학원에서 공부한 토플 경험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영어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서로 공부하고 영어 강의를 이해하고 영어로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치는 것은 참으로 버거웠다. 게다가 토론 중심의 강의에서 내성적인 내가 외국인 학생들과 거리낌없이 대화를 하고자 하는 마음 조차 갖게 하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었다.  


그 중 나를 언제나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대상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교포다. 한국말엔 조금 서툴지만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는 Korean American앞에서 영어로 PT를 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곤욕이었다. 교포들이 그냥 재수없어 보일 때도 많았다. 어릴적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재수 없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부모 덕에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외국어를 체득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큰 노력 없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국제 무대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게 된다. 나는 이들 가운데서 열등감에 시달리며 꾸역꾸역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포도,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도, 외국인도 적은 IT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나의 높은 토익점수가 나의 영어실력을 포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해외 프로젝트를 나가거나 공무원과 영어권 지역에 출장 가서 엉터리 통역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잠시 나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나의 영어 컴플렉스를 잊은 것이다.


그러다 몇년이 지나 내 잘못을 크게 뉘우친 사건이 생겼다.


외교부에서 의전 자원봉사자를 뽑는 공고를 봤다. 서류가 통과되었고 면접을 보러 외교부에 갔다. 면접을 보는 사람들 중 내 나이가 가장 많아보였다. 나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간 사람은 둘이 더 있었는데, 한명은 프랑스에서 살다와서 프랑스어까지 잘 했고 한명은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다 온 교포로 한국의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프랑스어를 네이티브처럼 해서 영어를 잘 못한다는 남자녀석은 프랑스 억양이 섞인 완전 유창한 고급 영어로 나의 기를 죽였고,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자녀석은 내가 부러워하는 시원하고 명쾌한 발음으로 나의 기를 죽였다.


그 가운데 나는 버벅버벅 그 자체였다. 매끄러운 발음으로 주루룩 이야기 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나는 아마추어 티를 내며 겨우겨우 내가 하고싶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깜박하고 있던 것을 다시 깨달았다.   


"아, 맞다. 나 영어 못하지."


내가 외교부 자원봉사자에서 탈락한 것은 당연했다. 취업도 아니고 자원봉사인데, 탈락이다. 내 영어 실력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나의 통역과 번역, 해외 프로젝트 경험 때문에 내가 영어를 잘 한다는 믿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어전공자가 자신의 전공을 밝히기를 꺼리듯, 매우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사실이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이제는 아등바등하며 따라잡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영어에 손을 놓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 방송이 훨씬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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