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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Oct 28. 2020

야근을 멈추고 집에 갈 수 있는 시점은?

야근 시 떠오르는 잡생각 정리

아... 오늘도 야근인가?  

야근을 하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 언제 집에 가지?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저녁도 안 먹고 일을 해치운다. 하지만 급한 내 마음과 다르게 내 손은 너무 더디게 움직인다. 여기에 내 머리마저 늦게 회전하면...  낭패다.


나의 집에 가는 시간은 다음과 같이 정해진다.


내일 펑크를 내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때

완벽하면 좋겠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내일 나로 인해 어떤 업무가 펑크가 날 수준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일 아침에 어느 정도 보완의 시간이 있다면, 그럼 집에 가도 좋다. 심하게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 일단 나는 내일 누군가와 공유할 정도의 수준의 무언가를 완성했으니까.  


회사에서 택시비를 지원해주는 시간이 시작될 때

일 때문에 차가 끊기고 집에 못 가는 상황이라면, 택시비는 당연히 회사에서 대줘야 한다. 그 비용도 안 대주는 회사를 다니는 당신이라면 그만큼 일을 안 하는 게 맞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나을 수 있다.


우연히 택시비를 지원해 주는 시간이 되기 몇십 분 전에 일이 끝나면 참으로 애매하다. 조금 더 일을 하는 척하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갈지, 아님 쿨하게 내 돈을 써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갈지, 그것도 아님 오랜 시간을 거쳐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갈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조금 더 일을 하는 척할 때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기억해야 한다. 나는 회사가 등쳐먹는 사람이 아니고 회사를 등쳐먹는 주도적 인간이란 것을.


매일 야근한다고 해서 당당하게 택시 타고 가기는 어렵다. 상황에 따라 당당함은 달라져야 한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다 똑같이 야근하고 다 늦게 가는 상황은 당당하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막대한 지장이 있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집까지 2시간 넘게 걸려 택시비가 4~5만 원 나오는데 매일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간다면 당신은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내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꽤 당당한 사람이어야 한다.

혹은 동네 주민과 항상 야근을 한다면 당당할 수 있다. 번갈아 결제하고 결재하면 되니까. 근데 그 사람이 높은 사람이라면? 매일이 눈치 보는 상황일 수 있고, 또 나의 퇴근은 높은 사람으로 인해 더 늦어지겠지만 당당할 수 있다.  


야근비와 나의 시간적 효율을 충족시킬 때  

우리 회사는 야근비가 밤 10시부터 산정되어 시간 단위로 나온다. 따라서 밤 10시 45분에 일을 끝냈다고 해도 야근비는 한 푼도 못 받는다. 내 연봉 기준으로 야근비는 시간당 만 원도 되지 않는 푼돈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도 나는 잠시 갈등을 하게 된다.

보다 업무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갈 것이냐, 아님 그냥 접고 지금 집에 갈 것인가...  

애매한 10시 10분에 끝났다면... 택시를 타기도 야근을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이때도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감정과 나의 신체상태에 따라 선택한다.

만원도 안 되는 돈 벌자고 시간을 축낼 수는 없다.


억지로 야근시킨 상사가 집에 가도 좋다고 말할 때

요즘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라떼는 말이야~ 신입사원 때 상사와 밤을 새운 적이 자주 있었다. 상사가 먼저 집에 간다면 그 이후에 가는 것은 좋은데, 이 상사님은 밤을 새워서 나와 함께 일하고, 일을 주고, 리뷰를 했다. 새벽 2시에 보자, 4시에 보자는 말이 나오면 나의 정신은 혼미함에 혼미함을 더하여 어지럼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신입으로서 상사의 패턴에 정말 힘들지만 나의 리듬을 맞추어야 했다. 상사가 집에 가도 좋다고 말할 때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이때는 쓰러지기 전까지 상사 옆을 지켜야 한다. 상사의 나에 대한 길들이기가 될 수도 있고, 또 나의 향후 회사생활이 이로 인해 좌우될 수도 있다. 이때는 당연히 택시 타는 것도 야근 수당을 신청하는 것도 당당하다. 대신 상사도 정시에 출근하는데 내가 어젯밤을 새웠다고 해서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상사가 늦게 와도 된다고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상사보다 늦게 오더라도 나는 늘 정시에 출근해야 한다. 이 경우는 요즘은 못 봤다.

단, 야근시킨 상사가 집에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가도 된다.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야근은 나쁜 것이다.

내가 일을 못하고 있거나, 내가 누군가의 압력으로 억지로 일을 하고 있거나, 내게 주어진 일이 많거나, 갑자기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 몰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집에 빨리 가기를 꿈꾸며 저녁밥도 안 먹고 야근을 한다.

흐휴...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

그래도 다행이다. 택시비라도 나와서. 또 택시비가 3만 원이 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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