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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Apr 17. 2021

우리 상희를 찾습니다

사라진 동기의 행방

컨설팅 회사를 다녔던 나에겐 3명의 동기가 있다. 각자 입사 시기는 다르지만, 신입사원 교육을 함께 받았기 때문에 동기가 되었다. 그중 우리 상희는 막내였다. 나보다 네 살 어린 우리 상희는 회사 내 전체를 통틀어 막내였어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내가 이렇게 우리 상희를 '우리 상희'라고 부르는 것은 상희는 진짜로 회사 내에서 '우리 상희'로 불렸기 때문이다.


우리 상희의 애사심은 특별했다. 회사에서는 항상 정장을 입어야 했는데, 정장 위에는 남들은 웬만해서는 달지 않는 회사 배지를 달고 자랑스럽게 여기저기 프로젝트를 활보했다. 언제나 꼿꼿한 자세와 바른 말투로 컨설턴트로서의 품위를 유지했다. 프로젝트를 가면 초롱초롱한 모습으로 '우리 상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나는 회사 교육 때 우리 상희와 한 방을 썼다. 새벽까지 숙제도 하고 또 자다 일어나서  남자친구와도 통화를 하는 정신력과 열정과 체력에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동기 모임을 하면 체력이 달려서 삐걱삐걱 대던 나와는 달리 우리 상희는 언제나 '언니들~'하며 재밌는 얘기를 풀어놨다. 그래서 이미 앞선 4년을 고난의 시간을 보낸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에 치인 걸까? 일에 치인 걸까? 해가 바뀔수록 우리 상희에게서 입사했을 때 가득했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있었다.


"언니들, 어제 처음 보는 부장이 나한테 막 반말한 거 알아요? 왜 기분 나쁘게 반말이야? 어리면 다 반말해도 되는 거야?"

"언니들, 거긴 너무 멀어요. 언니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요. 난 집에 갈래."

"프로젝트에 있는 고객이랑 이야기도 하기 싫어요. 우리 회사 부장이랑은 같이 밥도 먹기 싫어요. 그냥 사무실 책상 혼자 앉아 있는 게 좋아요"


점점 사람들과 단절되어 움츠러드는 우리 상희가 점점 나와 닮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나와는 너무 달랐던 우리 상희였는데 말이다.


몇 년 후, 우리 상희가 퇴사 소식을 알려왔다. 나는 이미 퇴사를 했을 때였고, 우리 상희는 같이 회사에 다니던 다른 동기에게 퇴사 전 한번 만나자는 소식을 알렸다.  동기는 우리 상희가 만나자는 그 시간이 맞질 않아 우리 상희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 상희를 볼 수 없었다. 카카오톡도, 문자도, 전화로도 우리 상희와는 연락이 안 되었다. 전화를 바꾼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우리까지 피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 상희는 직장 생활에서 겪은 찌든 때를 모두 털어내려는 듯 우리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우리 상희는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우리 상희를 추억할 때쯤이면 나는 농담 삼아 천주교도였던 우리 상희는 수녀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어느덧 우리 상희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이 이 글을 쓰며 느껴진다. 모든 걸 떠나서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우연이라도 우리 상희를 만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대부분 부푼 꿈을 안고 입사를 한다. 저마다 회사생활에서 기대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서 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회사에 기여를 하겠다는 바람,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성공하겠다는 바람, 커리어를 쌓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겠다는 바람, 회사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인싸가 되고, 부모님 체면도 세워드리겠다는 명예로운 바람...  


나도 그랬다. 그 어느 직장이든 내게 설렘을 안겨주지 않은 직장은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직장을 다니면서 그 설렘을, 그 열정을, 그 초심을 잊게 되는 까?




우리 상희, 언니들이 우리 상희를 기다리고 있어요. 언니들에게 돌아오세요. 우리 같이 빵도 먹고 치킨도 먹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이 글 보면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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