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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Apr 12. 2021

불면의 이유

잠과의 혈투, 그 서막.

나는 잠이 참 많다. 대학생 때까지는 넘치는 잠을 주체하지 못해 이것이 무기력증인가 싶었다. 스트레스받으면 잠을 잤고 오랜 기간 버스를 타도 잠을 잤고 비행기를 타도 잠을 쿨쿨 잘 잤다.


그래서 나는 밤을 새워서 무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밤새서 공부했어요. 밤새서 놀았어요. 모두 이해가 안 간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공부하고 놀고 일하는 사람들. 나는 밤새서 공부하든 밤새서 놀든 그만큼 잠을 자야 한다. 그 체력 혹은 타고난 습성이 부럽다. 이 부러움은 갓난쟁이 조카에게도 있었다. 피곤할 것 같은데 어린 녀석이 잘 시간도 아껴가며 열심히 잘도 놀았다.  


잠이 많았던 내가 직면한 첫 번째 위기는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을 때다. 하루 평균 3~4시간밖에 안 자도 언제나 쌩쌩했던 나의 직장상사는 나를 데리고 새벽 리뷰를 참 많이 했다. 신입인 나를 교육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나는 지쳐서 다음날 출근하기도 버거운데 9시에 출근해도 이미 앉아있는 직장상사 덕에 잡에 대한 약간의 내성을 키우기는 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근무시간에 조금이라도 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편도 2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에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일부러 종점까지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이 지하철이든 버스든 나는 무조건 앉아서 가야 한다. 앉은 만큼을 꾸벅꾸벅 졸며 부족한 잠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소싯적 잠이 너무 많았기에 불면이 스트레스가 될 거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잠이 안 왔다며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 직장 선배를 보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불면이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몸이 너무 피곤한데 잠을 못 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잠이 안 올까 봐 걱정되고 새벽이 되도록 잠이 안 오면 더 불안해져서 잠이 안 온다.


왜 잠이 안 오는 걸까? 이유를 생각해봤다. 


1.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거나, 모욕을 당했을 때다. 분해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2. 말을 많이 했을 때

나는 평소 거의 말이 없는 편이어서 회의 시간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많이 했거나 혹은 중요한 발표를 했거나 하면 잠이 안 온다. 한번 커다란 에너지가 분출되면 잠잠해지지 않나 보다.


3. 갑자기 열심히 일했을 때

이것도 에너지를 분출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근을 하고 돌아오면 누워서도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따라서 자고로 직장인이라면 제 때 퇴근을 해서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밸런스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4. 추울 때

나는 손발이 찬 편이다. 그래서 추우면 떨면서 잠을 못 잔다. 이불을 두 개 덮고 자도 춥다. 상시 따뜻한 집에 살고 싶다.


5. 잠만 자고 뒹굴뒹굴한 휴일의 마지막 날 밤

주말이든 긴 연휴든 다음날이 회사를 안 가도 되는 날이라면 이때 나는 잠을 참 잘잔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잠을 자도 잠은 또 온다. TV를 보다가도 졸고 있다. 그러다 출근해야 하는 날 밤이 되면. 잠이 안 온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주말에 실컷 놀고 월요일에 학교 갈 생각을 하면 잠을 못 잤다.


6. 나이 탓

아무래도 호르몬의 문제가 크겠지. 그렇겠지.   


잠이 안 와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있던 선배가 옛날엔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이해가 잘 된다. 요즘 그 선배는 잠을 더 못 자는 것 같다. 그것이 나의 몇 년 뒤 내가 답습해야 할 모습일 것 같아 두려움이 몰려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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