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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Mar 11. 2021

두근두근. 콩닥콩닥. 너 때문이 아니야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학창 시절에 유명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합창단원이면 큰 무대에서도 많이 서니, 무대 경험도 많고 TV에도 자주 나왔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긴장은 있지만 몸에 떨림은 없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학교를 간다. 음악 선생님은 본보기로 친구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노래를 시킨다. 친구들은 공부하다 심심하면 내 노래를 듣고 싶다며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단상 앞으로 나간다. 노래를 부른다.  

덜덜덜덜덜...

다리가 심하게 떨린다.

그렇게 떨어도 내 고음은 높이높이 올라갔고 멀리멀리 퍼졌다.

노래가 끝나면 환호성이 터진다.  


다리가 덜덜덜 떨리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치마 아래로 떨리는 다리를 친구들이 봤을지는 모르겠다. 대부분은 교탁에 다리가 숨겨졌기에 잘 안 보였을 수 있다. 나는 교실 저 끝을 응시하느라 떨리는 다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만일 내가 좋은 레슨을 받아 음대를 갔다면 아마도 서울음대를 갔을 것이다. 펜트하우스 아이들이 무조건적으로 가려고 하는 바로 그 서울음대. 이렇게 떨었더라도 화려한 드레스 아래 내 다리는 가려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던 나는 노래 이외에는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없었다. 손들고 발표하지 않는 학생으로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다. 대학에서도 발표가 많은 수업은 웬만하면 듣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하도록 했다. 토론을 하더라도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회사원인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말을 할 때가 많다. 순간순간 대답을 해야 할 때는 횡설수설이라도 대답을 한다. 성질이 급한 나는 남의 이야기를 듣다 답답해지는 때가 많은데 그때는 흥분해서 말을 한다. 그 외에는 웬만하면 입을 닫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은 무섭고,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오로지 컴퓨터 화면만 바라본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는다. 그럼에도 뭔가 실수를 했다면,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다면 그날 밤 잠을 못 잔다.


순서대로 말을 하도록 윗사람이 시킬 때는 정말 곤욕이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교실보다도 더 작은 회의실에선 내 심장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나는 그동안 말을 잘 못해서 말하는 것을 피해 다녔고, 말하는 것이 너무 떨리고 부끄러워서 말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말을 잘 못하고, 말하는 게 무섭다. 그리고 그 점이 매우 창피하다.


나의 평소 업무 역량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말만 잘했더라면 리더로서 얼마나 성공했을지, 아주 가끔 상상한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직업, 그리고 사람을 가장 부러워하며 오늘도 그 리더를 위해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나다. 


말하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계속 실감하게 되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말할 기회를 많이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나를 위한 연습의 기회로 만들어보자. 지금 아주 잠깐 다짐해본다. 곧 소극적인 나로 돌아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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