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12)_[동물들의 장례식]
고래에게 인사를 한다. 어쩌면 살아서 했으면 좋을 인사. 그렇지 못해 후회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인사를 남겨둔다.
동물들의 장례식(치축 글 그림/고래뱃속)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도 장례식을 한다. 까마귀는 모두 한 곳에 모여들어 마지막 말을 나누고, 코끼리는 식어가는 친구를 쓰다듬다가 그가 죽으면 자기들만의 무덤으로 가는 의식을 치른다. 침팬지는 차례대로 다가가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눈다. 그동안 이별이라는 감정은 위대한 인간들만 느끼는 것이라 착각했다. 오만을 넘은 것이라 반성한다. 그리고 또 반성한다. 죽기 전에 그에게 인사 건네지 못한 것을.
지난 3월 3일. 사람이 죽었다. 계속 복무하고 싶어서 성전환 수술을 선택한 그를 군은 강제전역시켰다. ‘규정’이 없다는 ‘근거’를 들어 사고로 성기가 상실됐을 경우에 적용하는 기준을 들이댔다. ‘강제전역을 취소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무시했다. 그가 죽은 후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한겨레신문 3월 4일 사설 인용)
숱한 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차별받지 않은 군인으로 당당히 살고 싶다.’고 웃으며 말하던 그는 결국 삶이 아닌 사라짐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말한다. 군이 강제 전역시켰다면 사회는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라는 말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어렸을 때 숱하게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자주 쓰이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을 떠올린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사회를 이루는 것은 인간이고, 사회가 만들어지는 이유 역시 인간을 위해서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가 인간을 살지 못하게 한다. 죽인다. 사회를 위해서 큰소리 내어서도 안 되고, 모여서 놀아서도 안 되고, 눈에 뜨이지도 않아야 한단다. 사회가 만든 규정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고, 규정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다수와 다르고 약하니 힘들어도 참으라 한다. 할 수 없다고 한다. 사회를 위해서란다.
그리고, 나도 그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림책 ‘동물들의 장례식’에는 고래이야기 나온다. 고래들은 친구가 힘겨워하면 숨을 쉬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물 밖으로 친구를 밀어 올린다. 하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되면 친구가 깊은 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함께 있는다. 그렇게 마지막을 함께 한다. ‘사회적 동물’도 아닌 고래의 의식이 나는 부끄럽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그를 힘껏 밀어 올리지 못했다. 호흡이 가뿐 걸 알면서 애쓰라고만 했다. 물 밑으로 가라앉는 그의 곁에 함께 있어주지도 못했다.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뒤에야 안타깝다고 말한다.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고래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나도 그도 고래로 태어나 살다 죽었을 세상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 그렇게 편지를 쓴다.
고래에게.
숨쉬기 어려운 너를 힘껏 밀어 올려보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내 등껍질 까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볼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곁에 있을 거야. 천천히 가라앉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가만히 눈을 감고 그리워할게. 가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너라고 생각할 게. 기억할게. 오늘 후회도 같이 기억할 게. 미안했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