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숙 Jan 25. 2022

오늘도 달이 밝았으면 좋겠다

그림책으로 본 세상(13)_달 밝은 밤』(전미화, 창비)


얼마 전, 집을 나온 아이를 한 명 만났다. 아이라고 하지만, 올해 스무 살. 대학 1학년생이다. 아이는 엄마와 갈등을 겪는 중에 이렇게 살다간 무슨 일이 날 것 같아 나왔다고 했다. 오래 전에 이혼 뒤 따로 살고 있는 아빠와 함께 살겠다는 것.


그런데, 이 문제가 그리 쉬운 일만 아니었다. 양육권과 친권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허락을 해야 하는 상황. 법적으로 성인이 되려면 4개월 정도가 남았는데, 이렇게 집을 나가는 것은 철없는 행동이고 현실회피이며, 노력해보지 않고 도망가는 거라는 게 엄마의 의견이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엄마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너무 걱정되어요. 이대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은데, 엄마나 아빠는 아직도 제 상황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달 밝은 밤』(전미화, 창비)은 날마다 술에 취해 사는 아빠와 함께 살던 엄마가 멀리 떠나고 남은 아이 이야기다. 아빠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엄마를 찾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엄마는 매달 필요한 돈을 보내지만 너무 멀리 있다. 돈을 많이 벌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아이의 유일한 친구는 ‘달’ 뿐. 아이는 생각한다. ‘곧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도, 술을 끊겠다는 아빠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 참 아픈 그림책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달’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엔 그냥 친구겠거니 했는데, 다르게 보인다. 또 다른 어른이기도 하고, 아이가 속한 사회이기도 하지 않을까? 계속 이어지는 달 밝은 밤을 보낸 아이는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살아가리라.’하고.


집을 나온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많은 부모들은 자기가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한다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양육되고 보호받아야 할 시간이 지나거나 제대로 양육되거나 보호받지 못하면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자란다.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는 크로노스. 그런 크로노스를 지하세계에 가두는 아들 제우스. 여러 신화는 부모를 제압하는 것으로 자기 시대를 열어간다. 하지만, 아기장수 설화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아이의 날개를 자르고 죽이는 것이 부모이기도 하다. 결국 싸우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달’이 필요하다. 멀리서 비춰주고, 지켜봐주고, 보이지 않아도 밤낮으로 떠있는 달.


부모 세대인 우리는 자기 아이에게 죽임을 당할 각오도 해야 하지만, 자기 자식이 아닌 누군가에게 ‘달’이 될 몫이 있기도 하다는 것.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또 어른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림책 본문은 이렇게 끝난다. 아이의 결심이다. 하지만, 한 장 더 넘겨 뒤표지에는 환하고 둥근 달과 함께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달의 대답이다. 우리의 대답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고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