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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Feb 26. 2018

'나는 농담이다' 북리뷰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작가 김중혁

금요일 밤만 되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거기까지였 나보다 하고.


앤트러사이트 서교

북모임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넘었다. 첫 번째 책은 편의점 인간, 두 번째 책은 육식의종말이었고 이번 세 번째 책이 모래의 여자이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었는데, 교보문고에서 구매해 읽기도 했고, 동네 책방에서 대여를 해서 보기도 했고, 인근 마포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책들의 범위가 달라졌다.


 교보문고에 가면 교보문고가 셀렉한 베스트셀러를 통해 요즘 대세를 접할 수 있었고, 동네책방은 책방 주인의 큐레이션을 통해 특정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도서관은 의도치 않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보석 같은 책들을 발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산동 동네 책방 '책방탐구생활'

이번 김중혁 작가의 '나는 농담이다'라는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조우하였다. 김중혁 작가의 '모든 게 노래'에 관한 책을 알고 있어서 친근하게 다가왔던 나는 제목만 보고 그냥 대여를 했다.

금요일 밤만 되면 밀려오는 잡다한 생각 때문에 다른 세계로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인 독서를 선택했는데 책을 펼치기만하면 금요일 밤의 불면증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다.




'나는 농담이다'는 진지하고 냉정한 현실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농담을 소개한다.

그리움과 고독을 이겨내려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진지하게 견디는 것이 아닌 농담으로, 웃음으로 버티면 자신을 어둠 속으로만 몰아내는 것보다는 추스르기가 쉽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농담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으로서 제안한다.


우주비행사가 되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우주를 떠돌게 돼버린 남자 이일영과 그의 이복동생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은 각자가 처한 상황을 견디고자 '농담'을 선택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엄마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송우영은 이복형을 찾아보지만 이일영은 이미 우주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우연 속에 있는 거고, 일영이는 우연의 바깥에서 다시 그만큼의 확률로 우연이 일어나야만 살 수 있는 거란다.


우주에서 유영하면서 산소가 고갈될 때까지 이일영은 농담을 반복한다. 이복동생이 공연하는 코미디 클럽에서 들었던 농담을. 송우영 역시 돌아가신 엄마와 이복형의 사라짐에 대해 코미디 클럽에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진다.


걱정하지 마. 누군가 슬퍼할 거라는 이유 때문에 그걸 얘기하지 않으면 슬픔이 사라질 거 같아? 절대 아냐. 세상에 슬픔은 늘 같은 양으로 존재해. 슬픔을 뚫고 지나가야 오히려 덜 슬플 수 있다고.


누구나 가끔씩 한 번쯤은 참기 힘든 고독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둑 터진 강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하염없이 블랙홀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에게 농담을 건네며 웃음으로 넘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웃음도 근육과 같아서 많이 웃을수록 더 자주 웃게 된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너무 진지하지 말자고 나 역시 말하고 싶다. 너무 우울해하지 마. 너무 열 받지 마.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


별을 바라볼 땐 이름을 외우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여기 와 보니 모든 게 의미 없게 느껴진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까운 별에 이름을 붙였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름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짓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얻지 못한 별들이 훨씬 많다. 모든 별에 이름을 지으려면 이름이 지구보다 더 커질 것이다. 우주에 속한 별들의 이름으로만 지구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제일 인상에 남는 부분은 작가의 말이다.

소설을 다 쓴 작가에게는 작가의 말을 쓰라는 출판사의 압력이 시작됩니다. 웃기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더 쓸게 없거든요. 완전 탈탈 털어서 내놓았는데 뭘 더 쓰라는 거예요. 주머니를 다 뒤져 놓고는 "지금부터 얼어서 나오면 100원에 한대씩."이라고 말하던 옛날 불량배들 같잖아요. 작가의 말없이는 책을 못 낸다고 하니까 작가는 그때부터 몸을 쥐어짜기 시작해요. 신발 밑창에 수겨 뒀던 비상금도 꺼내야 하고, 속옷 틈에다 꿰매 두었던 쌈짓돈도 다 털어야 해요. 신기한 건,  그렇게 털면 또 나온다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듯 털어서 작가의 말 안 나오는 작가가 없어요. 마라톤 완주를 막 끝냈는데, 스태프가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작가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고요. 10킬로미터 더 달려야 진짜 골인 지점이 나옵니다. 작가의 말을 끝내야 책을 드릴수 있어요." 뭔 소리야. 처음엔 그런 말 없었잖아. "작가님.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작가의 기본이에요."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작가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저는 또 하는 수 없이 달립니다.

송우영이 농담 속에서 살아간다면, 저는 소설 속에서 살아갈 겁니다. 문자와 문장과 문단 사이에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고, 절대 나가지 않을 겁니다. 물음표의 곡선에 기댄 채 잠들 때도 있고, 느낌표에 착 달라붙은 채 서서 잠들 때도 있을 겁니다. 마침표는 제가 들어가기에는 좀 작을 거 같지만, 문단과 문단 사이에는 충분히 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살 수 있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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