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포레스트 한국판 리뷰
요즈음 나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어딘지 모를 자격지심 때문에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나는 왜 더 잘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현재를 충실히 살다 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충만한 하루하루들이 모인다면 시간이 쌓일 것이고 그 시간들의 축적들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잡념들은 나를 괴롭혔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나니 까닭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느리게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니 묘하게 위로가 되었을까.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인상적이게 보고 브런치에 영화로는 첫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역시나 리틀 포레스트는 자극적인 소재 없이 잔잔하지만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감도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준비에 실패한 혜원(김태리)은 도망치듯 고향인 시골로 돌아온다. 그리고 네 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아간다.
그에 비해 재하(류준열)은 도시에서의 삶을 살다가 문득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의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서의 삶을 산다.
혜원과 재하의 친구 은숙(진기주)는 살면서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 도시의 삶을 동경하지만 시골에서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혜원과 재하와 함께 누린다.
시골에서의 삶은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잡초는 뽑고 뽑아도 마음의 걱정처럼 다시 살아난다. 봄에 열심히 모내기를 하고, 여름에는 땡볕에서 고추나 토마토를 따기도 하고 밤이 되면 다슬기를 주으러 계곡에 가기도 한다. 가을에는 생각지도 못한 태풍으로 농사를 망쳐서 속상해 하기 도하지만 밤을 따러 산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겨울 식량 준비를 위해 감을 따서 잘 꿰어 말리기도 한다. 그렇게 다음 계절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한 계절을 움직이다 보면 노동의 대가로서 정성 들인 달콤한 결실을 얻는다. 밖에서 사 먹는 것과는 다른 보람을 느끼면서 말이다.
도시에서는 음식을 마주하는 자세가 시골의 그것과는 다르다. 나는 혜원처럼 종종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웠고,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먹으며 삶을 유지했다. 밖에서 음식을 자주 사 먹다 보면 음식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감사함을 느끼기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시골의 음식은 살아있다. 생명을 머금은 음식들이 몸속으로 들어와 내 생명을 일부분이 되는 느낌이랄까.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계절이 깊어질수록 아름다워진다. 각기의 계절,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곶감이 맛있어졌다는 것은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대게, 사람들은 깊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마음도, 일도, 사랑도 깊은 것을 좋아한다. 겨울이 깊어진 것은 추워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달콤한 곶감을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겨울에 심은 양파가 잘 자라면,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단단하고 달다고 한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런 독백 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눈으로도 위로가 되고 마음으로도 위로가 된다.
혜원은 고향에서 네 개의 계절을 보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혜원이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엄마는 편지만 덩 그라지 남겨둔 채 가출을 했고 혜원이 이십 대의 후반이 되어서까지 서로 연락은 하지 않고 지낸다. 특이한 가정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까 하고 넘겼는데, 영화의 끝자락이 되어가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갔다. 혜원의 엄마는 엄마라기보다는 인생선배에 가까웠고, 남편의 고향에서 남편이 없는데도 떠나지 않고 혜원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있었던 이유는 혜원에게 뿌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 자신의 삶도 소중하지만 딸 혜원에게 돌아올 고향의 원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사랑이었다는 것도.
누구나 힘겨운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바람, 햇빛 같은 사소하지만 아름다웠던 소중한 장면이 있다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피를 뽑는 것을 무서워하는 내가, 주사 바늘이 삽입되면 여름의 영덕의 해변에서 수영했던 상상을 한다. 물속에서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모래에 데피는 상상. 마치 그런 것 아닐까.
영화는 시골에 삶을 아름답게 재조명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식기류들도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무인양품에서 볼 법한 것들이고, 벽난로 같은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재료들도 생소하고, 나오는 양념소스들도 특이하다. 현실과는 다른 면이 있지만, 그래도 리틀 포레스트 정도의 사치는 부리고 살고 싶다. 이십 대 후반에서 나는 혜원과 같이 리틀 포레스트를 꿈꾼다.
당신의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글쓰는데 힘이 되더라고요.
Instagram_ noonbu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