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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Mar 27. 2018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레이디 버드' 영화 리뷰



레이디버드는 현실 속의 영화다. 뉴요커를 꿈꾸는 레이디버드(시얼샤 로넌)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꿈이 많고 욕심도 많은 아이였다. 레이디버드처럼 도시에 살고 있지 않았지만 서울생활을 동경했고, 나를 포장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거짓말도 하기도 했고, 무작정 내가 살던 지역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레이디버드처럼 대학을 타 지역으로 갔다. 내가 살던 동네가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뉴욕처럼, 서울처럼 멋진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나도 멋진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 속 레이디버드는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10대다. 그래서 충동적이기도 하고 자기감정을 컨트롤하지도 못한다.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차에서 갑자기 뛰어내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기 위해 친한 친구를 버리고 소위 말하는 '일진'같은 친구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반대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기를 쓰며 노력하고, 불평등하게 대하는 선생님의 채점지를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레이디버드만의 일탈 일까? 레이드 버드를 보면 과거의 나가 오버랩되어 보인다. 나도 저 시절에 저런 행동을 했었구나 하고. 그러한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부끄러웠던 과거들이 많다. 

성장하는 과정 속에 레이디버드는 진실되지 못한 관계에 덧없음을 느끼고 과거에 친했던 친구와 화해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허탈해하고 배신감도 느끼지만 게이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한 엄마와 잦은 싸움을 하고 대학을 떠날때는 말도 하진않지만 고향을 떠나고 나서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알속에서만 살수 없다. 알을 깨고 나와야만이 세상을 마주볼수 있다. '크리스틴'이라는 부모가 지어준 본명이 아닌 '레이디버드'라고 불러달라고 하며 자기 세상을 구축하는레이디버드는 우리의 십 대의 끝이고 우리의 이십대의 시작이다.




레이디버드는 결국 뉴욕에 있는 대학을 진학한다. 아주 씩씩하게 짐을 꾸리고 비행기를 타고 집을 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생활한다. 그러던 여느 날 중 파티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아침햇살을 쬐며 터벅터벅 걷는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 학교 등의 이유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레이디버드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아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숲을 떠나고 나서야 숲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된다. 엄마를 향한 자신의 사랑, 고향에 대한 애착 같은 것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레이디버드의 진짜 삶은 여기서 시작할 것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레이디버드의 십 대는 끝났지만, 이십 대는 이제 시작일 것이다. 레이디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은 엔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엔딩이 진짜 끝일 수 없고 영화의 시작이 진짜 시작점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뒤를 되돌아 보고 명백히 다 끝난 것 같은 일도 자꾸 정리하면서 산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런 엔딩은 거짓말이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도 빵점이다. 비행기에 올랐다고 해서 간단하게 과거와 결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퀘이커 교도들의 개념이 있는데 그들은 열린 길과 닫힌 길이 있다고 말한다. 열린 길은 다음 단계가 눈에 훤한 경우를 말한다. 내가 지금 걸어야 할 길이 내 앞에 평탄하게 펼쳐져 있는 거다. 닫힌 길은 반대다.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깨닫는 거다. ‘문이 닫혔구나.’ 우리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열린 길과 닫힌 길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 내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저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에 한 발짝 내딛는 것뿐! 

나는 아직은 어설프고 다듬어지지 않은 레이디버드를 응원한다. 십 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이십 대는 눈앞에 펼쳐져있다. 레이디버드의 앞으로의  행보가 눈에 그려진다. 여러 가지 아픔을 겪을 거다. 그만큼의 즐거움도 얻을 거고. 힘들어서 엉엉 울수도 있다. 하지만 또 그 시기는 지나간다. 레이디버드는 하고 싶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당당히 도전하는 자신만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기대도 되지만, 이십 대의 초입의 레이디버드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방법을 찾아가면서 감내하기 힘든 좌절감도 힘듦도 겪을 수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가다 보면 또 다른 문이 열릴 거라고. 






<본 영화는 브런치 시사회로 관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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