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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Jun 10.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Custody, 2017)

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 영화는 브런치 시사회로 관람하였으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Jusqu'a La Garde (보호할 때까지), Custody (양육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각각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제목인 이 영화는 세 개의 제목이 모든 내용을 내포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당신을 좌석에 못 박아버릴 영화'라는 홍보 캐치프레이즈처럼 90분의 상영시간이 30분처럼 느껴질정도로 몰입감 있었다. 스토리의 놀라움도, 시각적인 자극도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을 자아내는 요소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간접경험을 준다. 카메라의 시선이 주인공의 시각도, 그 누구의 시각도 아닌 주변에 있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그곳에 있는 사람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투명인간처럼 그곳에서 모든 것을 관찰한다.


영화는 양육권 재판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의 양측 변론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양육권을 얻기 위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로 관객에게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난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자필 진술했지만, 아빠 측에서는 엄마의 세뇌로 인해 아이들이 거짓 진술했다고 주장하며 아이가 잘되길 바라고 부모로서 곁에 있어주고 싶다며 동정을 호소한다. 재판의 결말은 아빠 측의 승리로 끝나고 주말 중 하루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차지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아이와 아빠 사이의 숨 막히는 중압감은. 양육권을 얻기 위한 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빗나간 사랑 때문이었다. 이혼 후, 아이 아빠를 피해 숨어 사는 아내를 찾아내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 사랑이 아닌 집착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가 싫어 엄마의 거처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지만 계속되는 압박감에 결국 이사 간 주소를 실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겪는 중압감이 얼마나 힘들까. 차 안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아이는 아빠에게 엄마의 위치를 밝히기를 강요당하고, 아이는 필사적으로 숨기려 한다.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아이가 앉아있는 의자를 때리는 등의 행동을 통해 폭력해 준하는 고통을 준다. 게다가 아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던가, 아이의 말을 무시함으로써 상황을 통제하고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 게다가 그 공간은 대게 '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아이는 주인을 잘못 만난 강아지처럼 벌벌 떨며 고통을 당한다. 그 상처는 결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이사 간 거처를 들킨 이후 상황은 심각해져 간다. 멋대로 집을 찾아와 온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고, 딸의 생일파티에 찾아와 아내의 목을 조르고 도망가기도 한다. 결국에는 한밤중에 총을 들고 집을 찾아와 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총으로 문을 부순다. 아내와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욕실로 숨어서 숨을 죽인다. 마치 SF 영화에 외계인이 침략해서 찾아온 것인 마냥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긴장된 상태로 숨을 참고 몰입하게 된다. 결국 앞집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치고, 아이와 아내는 욕조속에 숨은 채 덜덜 떨다가 경찰에 의해 구출된다. 


영화는 아주 어렸을 적에 겪었던 일 일지라도 가정폭력 경험이 있는 사람, 혹은 데이트 폭력의 경험 있는 사람에게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영화 제목 '아직 끝나지 않았다'처럼 겪었던 폭력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 된다. 나이가 들어도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내면의 상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다시 사회로 나오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서사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간다. 우리 모두가 영화 속에 실재해 있으면서 관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영화는 딸의 공연을 제외하고 bgm도 나오지 않은 채, 경적소리나 삐그덕거리는 소리 등 일상생활에서의 소리만으로 현장감을 준다. 또한 어둠과 빛을 조절함으로써 심리의 강약을 조정한다. 

이 모든 방식이 세련되었다. 감독은 관객에게 어떠한 의도를 말하기보다는 관객에게 판단을 유보한다. 단지 주제를 선정함으로써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정하기만 할 뿐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사실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변했다며 울면서 잘못을 빌었던 남편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책이었을 뿐 결국은 똑같은 사람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영화 속에서 경찰이 '이제 끝났어요'라고 아내와 아이를 안심시키며 영화는 끝났지만 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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