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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Jun 18. 2018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 '허스토리' 리뷰

[본 영화는 브런치 시사회로 관람하였으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관련된 어떤 컨텐츠도 보는 것이 힘들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아픈 역사이기에 똑바로 마주하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과거를 알아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며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칫 무거워서 딱딱할 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역사 영화이므로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세련된 방식으로 영화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history 가 아닌 herstory는 문구처럼 역사라는 거창한 단어에 속을 들여다보면 개인들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영화는 그녀들의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젠더라는 관점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녀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꾸려나간다. 


영화는 1992년으로 시작된다. 문정숙(김희애)은 당시 잘 가는 부산 여행사 CEO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위안부 후원도 하고 회사 홍보로 이용도 한다. 그러나 집안일을 해주는 할머니 배정길(김해숙)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남일이라고 여겼던 문제가 사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하는 지점에서 문정숙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잘 나가는 여성 CEO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위안부에 대한 이슈는 커진다. 위안부를 후원한다고 거래를 끄는 일본 업체가 생기기도 하고 여자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정숙은 위안부 피해자를 모집하는 신문 광고를 크게 내기도 하고, 이리저리 다니며 피해자를 설득시키며 재판을 하자고 설득하기도 한다. 문정숙의 정의감은 얼마나 유지될까 싶기도 했지만 문정숙은 그것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1992년부터 시작하여 6년간의 23번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지칠까. 분명 수십 번 수백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결국은 일본의 '위안부'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는 결과를 이루어 내었다. 영화는 현실을 각색하여 만든다지만 그것보다 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을까.


위안부는 개인에게 치명적으로 숨기고 싶은 과거일 것이다. 수치와 부끄러움. 그것을 들춰내는 것은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매독에 걸린 아들이 상처받을까 봐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숨기는 것, 온몸에 문신이나 칼자국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남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 것 등 분명 숨기고 싶었을 테고 가능하기만 한다면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위안부 할머니의 용기와 그런 할머니들에게 지속적인 힘을 주었던 문정숙이 이 영화를 끌어나간다.


영화의 줄거리는 6년간의 재판이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그 과정의 서사가 영화 속에서는 세련되게 표현되었다. 가령 문정숙(김희애)이 영화 초반과 달리 영화의 끝무렾쯤에는 머리카락이 하얘졌다던지, 처음에 살던 넓은 집에서 이사 가서 좁은 집에서 살게 된다던지 문정숙의 딸 방에는 세계지도가 걸려있고 딸은 세계사를 읽는 장면들이 조용히 보였다. 



힘들고 외로운 재판의 과정 속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정의감만은 아니다. 사랑, 죄책감, 경제적인 능력, 주변 사람들의 도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6년이라는 쉽지 않은 세월 동안 견뎌내었고 꾸준히 앞으로 갔다. 회사에 돌을 던져서 창문이 깨지더라도, 사람들이 욕하고 따가운 눈초리로 보더라도, 재판이 길고 지루할지라도,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상황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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