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같지 않은 남일
평소와 다름없이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에세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책 소개 부분에 작가와 역자의 프로필이 똑같은 게 아닌가. 아무래도 작가의 프로필이 역자 프로필 부분에 그대로 복사되어 입력된 것 같았다. ‘아이고, 저런, 세상에’ 하면서 프로필 아래쪽에 있는 ‘정보 오류 수정 요청’ 버튼을 클릭하고 곧바로 오류 사실을 어딘가에 알렸다. 마치 내가 그 책의 번역가라도 되는 듯 안타까워하며.
며칠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그 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오류가 있었던 역자 프로필 부분은 ‘수정’이 아니라 ‘삭제’가 되어 있었고, 작가 프로필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해당 사이트에 책의 정보를 제공한 온라인 서점에도 들어가 보았다. 거기엔 아직도 여전히 작가와 역자의 프로필이 똑같이 적혀 있었다. 내가 보낸 메일은 해당 페이지 담당자에게만 가는 것인지 타 온라인 서점에는 반영되지 않은 듯했다.
어쩐지 속이 상했다. 조금만 신경 써서 삭제가 아니라 수정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 책의 역자와 출판사에도 괜히 투덜거렸다. 본인의 역서 프로필을, 출판사의 역자를 잘 챙겨야죠!
내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예전에 나도 온라인 서점에서 내 역서를 검색했다가 프로필에 다른 역자의 프로필이 적혀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이름과 전공 언어까지 똑같은 번역가가 있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역서 하나하나가 귀했던 나는 직접 번역한 책이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으로 둔갑한 것을 보고 흥분해서 곧바로 고객센터에 글을 남겼다.
~~책의 번역가 소개가 잘못되었습니다. 번역가 'XXX'가 여러 명 있으니 잘 확인해서 수정해 주세요. 어디로 건의해야할지 몰라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런 답변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OOOO(인터넷서점 이름)입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신 사항을 반영하였습니다. 정보는 업데이트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참고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욱 쉽고 빠르게 원하는 책과 정보를 찾으실 수 있도록 도서 등록과 배치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
번역가의 번역가 챙기기
어느 기사에 따르면 베스트셀러의 3분의 1이 번역서라고 한다. 이제 독자들은 번역서를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고 번역가들의 글과 인연을 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번역서의 제목은 기억해도 역자의 이름은 기억해주지 않는다. 유명한 원서라도 원저자의 이름은 잘 알지만 역시 역자의 이름은 거의 모른다.
-유지훈의 <번역의 즐거움> 출판사 서평 중에서
과거에 비해 요즘은 이름이 알려진 번역가도 많고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는 번역가도 있다. 하지만 번역가를 내세워 홍보하는 책이 아니라면,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역자 프로필쯤은 그냥 건너뛰고 책을 읽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책을 펼치면 작가 소개 다음으로 역자 소개를 꼼꼼히 읽는다. 번역가니까 다른 번역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역자가 아닌 한 사람의 독자로서도 늘 번역가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결론은 범인류적 차원에서 모든 번역가에게 작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다. 내 코가 석 자임에도 불구하고. 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