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시작
초라한 스펙의 소심한 지방대 졸업생
얼마 전 우연히 한 인터넷 번역가 카페를 방문했다. 예전에 가입했지만 거의 활동한 적 없는 카페인데, 여전히 수많은 번역가와 번역가 지망생들이 정보도 알뜰살뜰 챙기고 힘든 심정을 토로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막막하기만 했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90년대 중반, 학과 공부만 열심히 했던 나는 후배들에게 떠밀리듯 대학을 졸업한 뒤 이곳저곳 나름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구하는 회사들은 하나같이 남자를 원했고(그 시절엔 그런 일이 많았다), 중국어가 필요 없는 회사들은 내 능력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시키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었다. 내게 딱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한동안 여러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옮겨 다녔다. 그사이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번역하는 걸 무척 좋아했지만, 번역 일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때는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을 때여서 지금처럼 생판 초짜가 번역에 도전할 수 있는 경로는 별로 없었다. 번역 일은 대개 통번역 대학원을 나와서 선배들의 추천이나 출판 관련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시작한다고들 했다. 집안 형편상 대학원은 꿈꿀 수도 없었던 나는 중국어로 취직하는 일이 번번이 좌절되자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내 주제에 번역은 무슨!’ 하고 아예 눈을 돌려버렸다.
자격증 그게 뭐라고
20대를 어영부영 흘려보내다가 입사한 직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중국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어를 사랑해 마지않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지금이라도 다시 도전해봐!”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사이에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과 pc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수많은 회사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회사를 홍보하고 인재도 채용하기 시작했다. 검색만 하면 번역 에이전시들과 곧바로 연결되는 세상! 맞지도 않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기회가 생긴 줄도 모르는 바보였던 거다.
남자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번역사 자격증 시험부터 쳤다. 무엇이든 실력을 증명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단번에 딴 뒤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은 나는 자격증 하나만 믿고 번역 회사라면 어디든 지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답장이 와도 ‘지금은 해당 언어의 번역가를 모집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아마도 내 지원서가 턱없이 부족해서 그리 돌려 말했겠지.) 48만 원을 보내면 번역 일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이상한 곳도 있었다. 그건 당연히 노 땡큐였다.
그래도 다행히 두어 군데 회사에서 실력 테스트용 샘플 번역의 기회를 주었다. 있는 능력 없는 능력 몽땅 발휘해서 샘플 번역을 해서 보냈다. 그리고 그중 한 회사와 지금까지 쭉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드디어 번역을
자격증을 따고, 샘플 번역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첫 번째 번역 일을 맡았다. 내 샘플 원고가 그리 형편없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만 번역 회사 담당자는 내 이름이 역자로 실리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이른바 대리 번역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다들 그렇게 시작해요.”
‘네, 그럼요.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감지덕지한걸요’라고 생각하며 그저 행복했다.
그때는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달 내내 그 책을 번역해서 마감일에 원고를 납품하자마자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야 할 판이었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에게 결혼과 일,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되고 있었다. 보란 듯이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밤잠까지 포기해가며 열심히 두 달을 보냈다.
내 이름이 없는 내 역서
결혼 후 석 달쯤 지나 한창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던 어느 날 드디어 내 첫 역서가 출간되었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 이름이 쏙 빠진 책을 들고 ‘이거 내가 번역한 거야’ 자랑하려니 속이 상했다. 뭐 별수 있나? 언젠간 반드시 실력을 인정받고 내 이름이 적힌 역서를 갖고야 말겠다고 혼자 다짐하는 수밖에.
첫 번째 역서 하면 잊히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그 책에 실린 가짜 역자의 역자 후기인데, 마지막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오역이 없는지 걱정될 뿐이다.
그 말은 아마 그분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런 심정이었다. 초초보 번역가였으니… 아무튼 내가 그 가짜 역자를 걱정시켰다니 왠지 복수라도 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는 번역
그렇게 무사히 첫 번째 번역을 해낸 후, 이름이 없어서 슬퍼했던 그때의 대리 번역 역자는 벌써 스무 해 가까이 번역 일을 하고 있고 마흔 권이 넘는 책에 제 이름을 꾹꾹 박아놓았다.
그 긴 세월에 비해, 또 잘나가는 번역가들에 비해서 나는 역서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하지만 쥐뿔도 없던 내가 어떻게 번역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왔는지 스스로 아니까, 남들에겐 적어 보일 수 있는 그 숫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까, 마냥 초라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역서가 더 많았으면 더더욱 좋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날마다 든다.)
무엇보다 아직도 내가 번역가로 살고 있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고, 설레고, 감사하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런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 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