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채운 폴더
내 노트북에는 ‘못하거나 안 한 번역’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다. 제목 그대로, 번역 의뢰를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못했거나 안 한 책들의 원서 샘플 파일이 보관되어 있는 폴더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 있는 파일의 수가 내가 그동안 번역했던 원서의 수만큼 많다. 왜 그토록 많은 번역 기회를 놓치고 또 놓았을까? 그것들은 눈물로 채운 과거이자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소중한 보물이다.
첫 번역 이후
첫 번째 대리 번역 역서를 손에 쥐고 아쉬움이 컸던 나는 전보다 더 맹렬하게 여러 번역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별 성과는 없었다. 내 스펙은 여전히 초라했고, 단 한 차례의 대리 번역은 경력 근처에도 못 가니까. 흔히들 하는 말로 ‘일을 줘야 경력을 쌓든지 말든지 하지!’라는 심정이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소심하게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때 다행히 첫 대리 번역을 맡겼던 번역 에이전시에서 다시 한번 일을 주었다. 짧은 동화책 두 권과 소설책 한 권(상, 하권을 두 명의 번역가가 나눠서 하는 이른바 ‘공동 번역’)을 연속으로 맡아 번역했다. 게다가 대리 번역도 아니어서 내 이름을 당당히 역자로 올릴 수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처음 받아들고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번역가의 길이 눈앞에 조금씩 펼쳐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시작한 번역일인데
그 후로 약 3년간은 한 해에 2~3권 정도 번역 일을 맡아 해나가면서 번역 에이전시와의 신뢰도 쌓고 내 커리어도 차근차근 쌓아갔다. 역자 선정 과정에서 스펙 혹은 실력, 아니면 둘 다 때문에 퇴짜를 맞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단 최종 역자로 선정되기만 하면 한 권 한 권 최선을 다해 번역했다. 짧았던 ‘역자 프로필’에 번역한 책의 제목들을 하나씩 추가하는 게 얼마나 신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역서로는 XX 등 다수가 있습니다’ 하고 내 역서를 다 적지 못하게 될 날도 오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만 ‘육아’라는 큰 산에 부딪히고 말았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서너 살 된 첫아이와 젖먹이 둘째 아이를 함께 돌봐야 할 때는 번역은커녕 컴퓨터를 켤 여유조차 없었다. 마침 남편도 회사 일로 한창 바빴고 주변에 마땅히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큰애는 유치원을 다녔는데, 내가 점심도 제때 못 먹고 둘째 아이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반나절 만에 하원해서 집으로 쪼르르 돌아왔다. 일하기 위해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 둘을 종일반에 맡기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돌보미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아 결국 눈물을 머금고 번역 의뢰를 거절했다. 사정을 말하고 나니 의뢰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한 번역 일인데’ 싶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엄마로서는 아이들과 함께 보낸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번역가로서는 속상하고 답답한 날들이었다.
제발 감이 떨어지지 않기를
그러던 어느 날, 눈물 나게 고마운 메일을 하나 받았다.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이제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아이 둘 키우느라 바쁘시죠?
이제 번역 슬슬 시작하셔야죠? 샘플 번역 보내드려도 될까요?
몇 년 전에 번역했던 책 하나가 그즈음 출간되었는데, 번역 에이전시 담당자가 그 책의 역자 증정본을 내게 챙겨 보내면서 제안한 말이었다. 아, 나를 잊지 않았다니! 마치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낡은 서랍 속에 처박혀 있다가 햇살이 내리쬐는 눈부신 책상 위로 꺼내진 기분이었다. 첫 번째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뻐하며 샘플 번역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육아에 매진하는 사이 번역 실력에 먼지가 잔뜩 쌓여버린 것이다. 이젠 감나무에서 감(번역 일)이 떨어지길 바랄 게 아니라, 내 감(번역 감각)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것. 다시 시작하려니 서너 페이지 되는 샘플 번역도 버거웠다. 불안한 실력은 번역 원고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최종 역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뿐인가? 원서가 어렵거나 너무 복잡해서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 책도 있었다. 저자와 출판사와 미래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그런 책은 ‘난 못해요’라고 미리 자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가 났다. 속이 상해서 밤새 ‘이불 킥’을 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번역 실력을 다시 키우려고 노력했다.
현재 진행형
그렇게 내 역서가 되지 못한 원서 파일들은 ‘못하거나 안 한 번역’ 폴더에 아직 그대로 들어 있다. 실력과 스펙 때문에 거절당한 책들, 개인 사정과 능력 때문에 거절한 책들이 빠짐없이 몽땅 다 말이다. 지금도 가끔 그 폴더에는 새로운 원서 파일이 추가된다. 예전보다 확연히 줄어들긴 했지만.
다른 번역가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지방대만 졸업한 스펙 제로의 가정주부 늦깎이 번역가는 그렇게 번역을 해왔다. 나를 믿고 계속 번역 의뢰를 해주는 번역 에이전시와 출판사에 그저 고맙고, 번역 일이 바빠 살림을 내팽개치거나 히스테리를 부려도 너그럽게 이해해 준 가족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번역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못하거나 안 한 번역’ 폴더를 떠올리며 늘 노력하는 겸손한 번역가로 살고자 한다. 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