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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Apr 28. 2020

엄마, 참 예뻐요

그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바짝 자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단골 미용사가 너무 열정적으로 머리를 다듬은 나머지, 나는 내 생애 가장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게 되었다.

이왕 자른 머리 되돌릴 수는 없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의 위로를 받아야겠다 싶었다.


“내 머리 어때?”


사실 남편은 내가 머리를 어떻게 해 와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늘 이렇게 말한다.  “오, 진짜 예쁜데?” 신뢰성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위로는 되니까 고마울 따름.

문제는 아이들이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우리 집 청소년들! 역시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너무 남자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게다가 큰 아이는 자꾸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둘째 아이는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아, 속상해.


안 그래도 두어 달 전 아이들과 실내 수영장에 갔을 때, 내가 새로 마스터한 접영을 자랑스레 보여줬더니 아이들 하는 말이 “엄마, 정말 멋있어요!”가 아니라 “엄마, 정말 등이 넓어 보여요!”여서 심히 좌절했었는데… 이제 머리까지 남자 같아졌으니….


예쁘다, 멋있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냐? 요것들아!

자꾸 그렇게 부르면 엄마 진짜 삐뚤어질 테다! 이참에 눈썹에 멋지게 스크래치도 두 줄 내고 귓바퀴에 피어싱도 하나 뚫어버릴 거라고 협박(?)을 했더니 그건 또 좋단다.  

(그나저나 정말 피어싱 하나 뚫을까? 꽤 멋있을 것 같은데. 나이가 뭐 중요한가요? 심각하게 고민 중. ㅎㅎ)



눈썹
- 박준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하긴 나도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드렸던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도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싶으셨던 것 같다. 평범한 아줌마 머리에 유난히 기미가 많으셨던 엄마는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앉을 때마다 남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아이고, 내 얼굴 드러바서(더러워서) 못 봐주겠다.” 하셨으니까. 그럴 때 내가 곁에서 “아냐, 엄마. 내 눈엔 곱고 예쁘기만 한데 뭘.” 하고 한 마디 해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제는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수 없는 그 말…. 어쩌면 그 벌을 지금 이렇게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n


photo by 눈큰 /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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