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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Jul 15. 2020

이토록 따뜻한 오지랖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지난주에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무심코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지막 계단에서 그만 삐끗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남사스러워서 넘어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벌떡 일어났을 텐데(ㅎㅎ), 그날은 도무지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거 느낌이 좀 싸한데… 하면서 일단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찌릿찌릿 시큰시큰거렸지만 별로 붓지도 않았고 멍도 올라오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근육통 연고만 바르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시작된 통증이 새벽 무렵엔 잠이 깰 정도로 심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음 날 병원을 갔더니… 다행히 뼈는 괜찮은데 인대가 손상되었다는군요. 엑스레이에 초음파까지 찍어보던 의사는 복숭아뼈 근처에 주사를 찔러 고인 피를 잔뜩 뽑아냈다. 그리고 3~4주 정도 반깁스를 하고 물리치료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난생처음 깁스를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근육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도 해보려고 며칠 전 주문한 인바디 체중계가 하필 그날 택배로 도착할 건 뭐람. 할 수 없군, 운동은 다음 기회에, 나는 좀 속상했다. 그뿐인가. 나이가 드니까 자꾸 사고를 치네, 칠칠치 못한 내가 한심했고, 바쁜 남편 괜히 더 바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물리치료를 받으려고 남편 차를 얻어 타고 병원엘 갔다. 그런데 병원을 들어갈 때는 얌전히 내리던 비가 병원을 나올 땐 우산도 소용없을 만큼 요란하게 퍼붓고 있었다. (며칠 전 부산에 호우경보가 내리고 시간당 6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던 바로 그날임) 나는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다른 볼일을 보고 나서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남편의 차를 기다리느라 잠시 병원 입구 앞 주차장에 서 있었다. 내 옆에는 나처럼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갑작스러운 폭우에 당황한 할머니 서너 분이 서 계셨다. 그런데 집에 갈 걱정을 하시던 그분들이 갑자기 내 깁스를 보더니 안타까워 한마디씩 하신다.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우리도 이리 못 가고 요(여기) 서있다 아이가. 좀 덜하면 갈라꼬.”

“아이고, 발목을 다쳤는가베. 힘들어서 우야노.”

“나는 팔목을 요래 다쳐서 왔어. 요것도 힘든데 발은 더 고생이겠네.”

“나도 앞전에 발목 다쳐가꼬 두 달이나 깁스 했는데, 아직도 아프다카이. 그게 그리 잘 안 낫는기라.”

“그러니께 물리치료를 꼬박꼬박 잘 받아야혀.”


순간 그 말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바람은 사납게 불고, 옷은 젖어 축축하고, 머리 꼴은 엉망이고, 깁스에 빗물 들어갈까 봐 한쪽 구석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내게 생판 처음 보는 할머니들이 건네는 관심과 공감의 말들. 이제는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도 혼자 눈물만 찔끔할 뿐, 엉엉 울며 어리광 부릴 데가 마땅히 없는 마흔일곱 짤 아줌마에게 그 짧은 말들은 마치 호~ 하고 입김을 불며 발라주는 엄마의 ‘빨간약’과도 같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그런 작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들에게 “네, 물리치료 잘 받을게요.”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마스크 때문에 할머니들은 내 웃음을 제대로 못 보셨겠지만, 부디 내 고마운 마음이 전해졌길.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Life is Made up of Little Things)
-메리 R.하트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주리.
장영희 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중에서 발췌



예전에 한 중년여성이 나이가 드는 걸 언제 실감하냐는 질문에 “길을 가다가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과도 서슴없이 이야기할 때”라고 대답하더라. 하긴 그렇지.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가게에서, 심지어 벌거벗은 목욕탕 안에서도, 분명 처음 보는데도 세상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인 것처럼 이야기를 건네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 어렸을 적에 나는 나중에 저 나이가 되어도 아무에게나 덥석 말을 걸지 말아야지, 주책맞게 큰 목소리로 관심을 보이지는 말아야지, 괜히 참견했다가 오지랖 넓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러면 좀 어때’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낯선 이의 작은 관심이, 공감이, 오지랖이 누군가를 울컥하게 만드는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요즘처럼 무관심과 침묵이 더 쉬운 세상에는 넘어져서 엉엉 울고 싶은 사람에게 기꺼이 ‘오지라퍼’가 되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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