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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Dec 15. 2020

아직 보름이나 남았다고요

시작하기 좋은 오늘


지난 주말, 기말고사를 앞둔 큰아이가 스마트폰을 나에게 맡기고 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제가 지금부터 2시간 동안 집중해서 공부할 거거든요. 만약 그 사이에 폰을 돌려받으려고 오면 제발 한심하다는 듯 절 째려봐주세요.”

귀여운 녀석! 너의 생각과 노력이 기특해서 엄마는 너를 그렇게 쳐다보지는 못할 것 같은데…. ㅎ


아무튼 올해 수능이 끝나고  뒤부터였나? 보이지 않는 바통이라도 건네받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고등학교 2학년 큰아이가 걸핏하면 자신의 각오와 계획을  소리로 떠벌리고 다니는데, 귀가  아플 지경이다.


“엄마, 오늘 밤엔 학원에 다녀와서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할 거예요!”

“엄마, 새로 산 문제집이에요. 이번 달에 이 과목을 아주 끝장내버릴 거예요!”

“엄마, 내일 아침엔 6시에 깨워줘요. 학교에 일찍 가서 공부하려고요!”

“엄마, 일요일엔 독서실에 가서 8시간 스트레이트로 공부만 할 거예요!”

“엄마, 앞으로는….”


누가 들으면 엄청 모범생에 우등생인 줄. 뭐 저도 괜히 불안하고 긴장되어 더 그러는 것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뿌린 공수표의 절반이라도 거둬들이면 차암~ 좋을 텐데,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차암~ 한결같은 우리 큰아이. 어쩌다 무심코 붙잡은 스마트폰으로 어쩌다 보기 시작한 유튜브를 몇 시간이나 보는 건 예사고, 또 어쩌다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했다 하면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느릿느릿 하루를 시작하는 녀석. 새로 샀다던 문제집은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만’ 있다.


그래, 네가 누굴 닮았겠니, 쉰을 바라보는 엄마도 여태 그러는걸. 나의 ‘공수표’들을 ‘간직해놓고만’ 있는 미리 알림 앱에는 몇 주, 아니 몇 달, 심지어 몇 년 전 입력해두었는데도 여전히 체크하지 못한 리스트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혹여 실천하겠다고 지정해둔 날짜를 넘겨도 다시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금방 새 날짜를 지정할 수 있으니, 참 미루기 편한 세상 아닙니까? ㅎㅎ)


그렇게 할 일을 미루면서 시간만 어영부영 흘려보내고 어느새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마주 보고 있는 나.

올해는 특히 코로나로 세상이 멈추고 우리의 일과 일상까지 자의 반 타의 반 멈춘 게 많아 더욱 아쉽다. 이렇게 2020년을 끝내야 한다니, 세상 허무하고 우울하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든다. 이대로 한숨만 쉬다가 또 나이 한 살 더 먹겠구나… 하는데


그럴 때마다 큰아이의 거침없는 선언이 나를 일깨운다. 놓치고 흘려버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라도 새로 결심하고 새로 시작하는 큰아이의 지치지 않는 파이팅이 나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 아직 보름이나 남았다고요! 올해가 가기 전에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n



photo by 눈큰 / Nikon D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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