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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Dec 23. 2020

크리스마스 사진을 검색해 보다가


필요한 사진이 있어서 내 구글 포토 계정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사진을 필름이 아닌 파일로 저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찍어온 가족사진들은 물론이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가 어설프게 사진작가 흉내를 내며(ㅎㅎ) 찍어온 풍경 사진이며 사물 사진들도 잔뜩 들어있어서 이따금씩 필요한 사진을 검색하여 다운받곤 한다.

그런데 어제 거기서 ‘크리스마스’를 검색해 보다가 해마다 이맘때 찍은 사진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맘때 우리 가족은 매번…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으며 사진을 찍었고, 크리스마스트리(그게 우리 집 트리든, 남포동 거리의 대형 트리든, 가족여행으로 갔던 외국 호텔의 트리든,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던 근사한 식당의 트리든 간에) 앞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우리 집 산타 아저씨(ㅎㅎ)가 아이들에게 주고 간 선물과 그 선물을 들고 잔뜩 신이 난 아이의 얼굴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그 사진들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린 참으로 행복했구나, 고맙게도.


메리크리스마스 / 곽해룡

펑펑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다고 믿는
나영이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것처럼
산타도 하느님도 사람들이 다 지어낸 거라고
나영이를 울려서 재운 할머니와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다가
할머니 몰래 현관문을 열어놓은 나영이가
쌔근쌔근 잠 든 틈을 도둑은 놓치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간 도둑은 쌀독을 슬며시 열고
독 안에 가득 찬 공기를 들여다보았다
쌀 냄새가 잘 밴 공기를 보자 도둑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콱 막혔다

공기는 바가지로 훔칠 수 없어서
도둑은 가지고 온 쌀자루를 풀어
독 안에 부었다
쌀을 부어 넣자 잘 익은 공기가 몽땅
독 밖으로 밀려 나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이 여기저기 내걸렸고 앙증맞은 산타가 올려진 크리스마스용 케이크도 나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거리도, 가게도, 사람들의 마음도 텅텅 비고 쓸데없이 화려한 장식만 남은 기분이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러니 외롭고 슬픈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차분하지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지난 크리스마스 사진 속 평온한 일상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n


photo by 눈큰 / Nikon D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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