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큰 Jan 06. 2021

신춘문예에 도전했었다…

나의 첫 신춘문예 낙방기


제목 그대로다. 난생처음 신춘문예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아니, 미끄러졌는데 보기 좋게는 무슨. ㅎㅎ


떨어진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발표는 1월 1일이지만 당선 소감을 미리 받기 위해서 당선 작가들에게는 12월 26일 전후로 연락이 간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월 1일 새벽 3시쯤이었나? 잠에서 깨어(요즘 통 새벽잠이 없어서 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아이패드를 켜고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 글쎄 그 꼭두새벽에 신문사들의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기사가 이미 떠 있더라는…. ‘벌써?’ 하며 놀란 것도 잠시, 내가 응모했던 신문사를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내 이름은 없었다. 눈곱을 떼고 다시 봐도 없었다. 후보작들이 거론되는 심사평에도 없었다.


그래, 차라리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나아, 후보작에 있었으면 아쉬워서 어쩔 뻔,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도전한 것에 의미를 두자, 뭐 그런 흔해빠진 위로를 나 자신에게 대충 던져주고 나서 당선된 시를 읽어보았는데…

여느 때보다 더 어렵고 진지한 작품이 당선되었더란 말씀. 어이쿠야! 그 시에 비하면 내가 보낸 시들은 완전 귀염뽀짝한 동시에 가까웠다. (동시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문득 11 중순 어느 , 지방  우체국에서 상기된 얼굴로 남이 볼세라 부끄러워하며 응모 원고를 등기로 부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 드론을 띄워 촬영이라도 해놓은  삼인칭 시점으로  머릿속에 보였다. ,  안쓰러운 모양새 하고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쓸데없는 공을 그리도 들였는지 싶다. 본명으로 보낼까 필명으로 보낼까 하는 유치한 고민에서부터, 고오급 A4 용지를 굳이 사서, 여러 번 테스트해가며 최대한 깔끔하게 출력한 원고에, 클립 색을 신중히 골라 끼우고, 구겨질세라 그걸 얇은 L자 파일에 넣은 다음, 마지막으로 누런 우편 봉투에 넣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신문사 주소를 써 내려갔던 나. 등기를 접수하기 전에 그놈의 봉투 인증샷을 찍어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었더랬다.

지나고 나니 헛웃음만 나오네. 그 정성으로 내 시를 더 다듬었다면 당선되었으려나요? ㅎㅎ


아무튼 나의 첫 도전은 나름 진지했음에도 귀염뽀짝하게 끝나고 말았지만,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남았다. 마침표가 아닌,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땡! 탈락하셨습니다!’와 함께 김빠진 채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야 하는 기분은 완전 별로지만, 영감을 받아 시를 쓰고, 정성껏 응모하고, 남몰래(가족들도 몰랐으니) 기대하며 보낸 지난 몇 달간의 기분이 그걸 충분히 상쇄시켜주니까, 이렇게 낙방기 한번 시원하게 쓰고 나서, 아닌 척 모른 척 계속 도전해보려고.

혹시 또 모르지. 언젠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지도. 자고로 꿈은 크게 가지라 했다. n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사진을 검색해 보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