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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Sep 02. 2021

안녕, 길고양이


우리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참 많다. 몇 해 전 우리 동네 맞은편이 재개발되어 수십수백 채의 낡은 집들이 허물어지고 높다란 새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그 좁은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던 길고양이들은 다 어쩌누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그중 꽤 많은 무리가 우리 아파트 단지로 찾아든 모양이었다. 고맙게도 우리 아파트에는 캣맘도 있는 듯했다. 길고양이들이 누군가 놓아둔 사료며 물을 먹는 모습을 자주 보기에. 


나는 여태껏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고양이가 많은 우리 동네가 참 좋았다. 특히 우리 동 화단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이름까지 지어주고 인사를 하거나 간식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유독 신경이 쓰이는 고양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 너무나 작고 여윈 모습…. 처음엔 새끼 고양이인가 했지만, 너무 말라 체구가 작아 보였던 그 고양이는 주로 내가 저녁에 음쓰를 버리러 나가면 배고프다는 듯 힘없이 야옹 울어댔다. 아이들과 나는 간식을 주며 녀석에게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장군처럼 튼튼해지라고. 


그러다 며칠 뒤, 낮에 우연히 장군이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간식이라도 주려고 다가가서 보니… 녀석은 몸만 야윈 게 아니라 건강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였다. 한쪽 눈은 부어 조금 감겨있고, 눈물 같은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털은 윤기 하나 없이 약하고 듬성듬성했다. 그때부터 더 신경이 쓰였던 장군이. 나는 그날 길고양이들에게 주면 좋다는 닭고기로 만든 고양이 전용 간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내가 이런 걸 사게 될 줄이야 ;;) 녀석을 좀 더 잘 먹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간식이 도착한 날에는 일부러 장군이를 찾아내어 햇반 용기에 그걸 잘게 찢어서 주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한 이틀을 먹였나? 먹이는 동안 장군이 상태를 봤는데, 눈은 어째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숨소리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저렇게 그냥 둬도 될까?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하나? 난 이동장 같은 것도 없는데? 그럼 박스 같은 건 안 될까? 아이고, 내가 뭘 알아야지.’ 고민 또 고민….


결국 다음 날 나는 기운 없이 풀숲에 누워있는 장군이에게 닭고기를 주면서 눈 사진부터 찍기로 했다. 지난 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길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없을 때는 사진을 찍어 동물병원에 보여주고 약을 타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기에. 그런데 그날은 전날과 다르게 닭고기를 보고도 시큰둥하니 누워만 있는 장군이. 나는 녀석이 너무 졸리거나 아님 방금 캣맘이 준 사료라도 먹었나 싶어 일단 닭고기만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풀에 가려 제대로 찍지 못한 눈 사진은 나중에 밥그릇을 치우러 오면 찍기로 하고.  


그런데 그날 오후.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화단에 웬일로 장군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보통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밑에 앉아있는 녀석인데 왜 저기서 자는 거지? 하는데, 뭔가 쎄한 느낌… 한참을 봐도 움직임이 없다… 서… 설마….


© sveninho, 출처 Unsplash


불행히도 내 예감은 맞았다. 장군이는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모양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본 큰아이가 나 대신 화단으로 내려가서는 장군이 죽은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수위 아저씨에게 그 사실을 알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몸이 많이 안 좋았나봐요. 너무 맘 아파하지 마세요.” 

아이가 말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고양이에 대해 좀 더 잘 알았다면, 그래서 좀 더 빨리 조치를 취했다면 녀석이 살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반려동물은 못 키우겠다고. 겨우 며칠 본 녀석이 떠난 것도 마음 아픈데, 혹여 몇 년을 함께 정붙이고 살던 녀석이 떠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고.


나이가 들면 반려묘와 함께 살고 싶었던 내 작은 소망은 그날 그렇게 슬픔에 묻혀 버렸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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