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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Oct 06. 2021

제 꿈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나는 꿈을 참 잘 꾸는 편이다.


한창 키가 자랄 때는 슈퍼맨처럼 주먹 쥔 손 하나를 앞으로 뻗고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꿨다. 그런 꿈을 오랜 기간 꿨다면 키가 쑥 자랐을 텐데, 중학교 3학년 때였나? 하늘을 날기 위해 도움닫기를 하다가 절벽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서는 꿈을 꾼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았다. ㅠ

시험, 취직, 결혼 등 큰일을 앞두고는 길을 찾거나 물건을 찾는 꿈을 잘 꿨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그런 꿈을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의 태몽도 내가 다 꾸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태몽을 대신 꿔주기도 한다는데, 나는 내가 알아서 꿨고, 바라던 임신이라 좋아했다.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에는…

친정집 부엌에서 엄마를 만나는 꿈을 종종 꾸었다. 나는 엄마가 남은 가족들 걱정에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 아프면서도, 그렇게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계속 엄마 꿈을 꾸고 싶었다.    


그 외에 이사나 남편의 발령을 앞두고는 대형 사고를 겪는 꿈을 꿨다. 그런 꿈은 대개 자신의 상황이 크게 바뀔 것을 암시하는 꿈이라고 한다. 또 이빨이 빠지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꾼 다음에는 나 또는 내 가족 중에 누군가가 꼭 아프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혹시 신기가 있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가위에 눌리기도 한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한번은 내 몸만큼 커다란 은색 쇠 가위에 눌려 꼼짝도 못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꽤나 끔찍한 악몽이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서는 말 그대로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이 너무 웃겨서 내내 웃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난달에는 몇 날 며칠 똑같은 악몽을 꿨더랬다.

다름 아닌… 거대한 학교에서 3학년 2반을 찾는 꿈. 다만 꿈속 학교가 일반적인 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학년 교실이 복도를 따라 반 순서대로 있지 않고 여기저기 뒤죽박죽 있는… 심지어 복도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을 하러 가는 참가자들이 오르던, 미로처럼 복잡하게 엉킨 계단 같았다. 그땐 <오징어 게임>을 보기 전이었는데… 섬찟 ;;

아무튼 밤마다 그놈의 3학년 2반 교실을 찾느라 얼마나 학교 안을 돌아다녔는지, 힘들고 답답하고… 세상 그런 악몽이 없었다.


출처 : 넷플릭스


사실 내가 그런 꿈을 꾼 건, 꿈이 대개 그런 것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게는 신중하게 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내 첫 책의 출간 계약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 3 큰아이의 수시 원서를 넣는 것이었다. 거기에 샘플 번역까지 갑자기 들어왔지 뭡니까. 뭐 샘플 번역이야 늘 하던 대로 하면 해결되는 일이었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출간 계약.

난생처음 출간 계약서를 받아보았다. 그런데 A4지 11장이나 되는 계약서에 적힌 글이… 우리말이 아니라 거의 외계어에 가까웠다. 용어 자체가 너무 생소하고 까다로운!


그리고 아이의 수시 원서 접수.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요즘의 입시를 이해해 보려고 그동안 나름 입시정보를 클릭하고 다녔지만, 뭐가 뭔지 어렵기만 한 못난 부모였다. 일단 여기도 용어가 너~무 생소해. 게다가 정보는 너무 많고 성적 계산법은 너무 복잡해!


결국 나는 명색이 번역가인데도 현실은 전혀 번역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ㅠㅠ  


하지만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사람도 궁지에 몰리니까 초인적인 이해력이 발동하더라는! 기한을 코앞에 두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또렷한 정신과 차분한 마음으로 계약서와 입시 요강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갔고, 마침내 계약서를 이해하고 출판사에 제때에 답변을 보냈으며 큰아이의 수시 원서를 여섯 군데 넣는 데도 성공했다. 무야호!


아무튼 딱 그날이었나?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려던 나는 오기가 났는지 용기가 남았는지 ‘내 오늘 밤 꿈에는 반드시 3학년 2반을 찾고야 말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잤으나… 힘든 일을 해결한 덕분인지 내 주먹 덕분인지 ㅎㅎ 그날 밤 이후로 다시는 그 학교 꿈을 꾸지 않았다.


근데 왜 하필 3학년 2반인지, 대체 그 교실에 뭐가 있는지를 알 길이 없어짐. 궁금한데 어쩌지? n



우리는 흔히 길몽과 흉몽, 악몽과 예지몽 등의 단어를 쓰면서 꿈을 분류하고 차별하기도 하지만, 융 심리학에서는 좋은 꿈과 나쁜 꿈을 굳이 가르지 않는다. 악몽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흉조가 아니라 ‘내가 삶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무의식은 일종의 멘토이자 구원투수로서 우리의 의식을 향해 끊임없이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매일 밤, 너무도 간절하게, 당신이 놓쳐버린 무의식의 열망을 기억해달라고.

- 정여울의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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