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마 again

트레비분수에 동전 안던져도 로마에 다시 오네.

by 시골할머니

딱 10년 전에 로마에 왔었다. 2박3일 이었나? 리스한 차를 몰고 로마 들어오는데 교통체증으로 학을 떼어서, 로마외곽의 숙소에서 버스로 이틀을 오가며,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판테온 , 바티칸, 트레비 등 정말 유명한 곳만 찍고 갔더랬다. 그때만 해도 내 인생에 로마를 다시 올 줄은 몰랐다. 기대도 안했기에 트레비분수에 동전도 안 던졌다.

그랬는데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 내가 로마에 다시 왔다. 얼떨결에 로마행 비행기티켓이 예약 가능했다는 이유로.

사실 이번 여행은 겨울에 카나리아제도에 가는게 첫번째 목표였다. 오랜 기간동안 여행해 보고 싶었고, 여러 여건상 가능한 기간이 8월말에서 2월초였다. 로마행 표가 가능했고 , 그래서 시칠리아에 가기로 했다. 로마에 간 김에 일주일정도 로마를 즐기기로했고.

떠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로마에 소매치기가 들끓는 다던데, 유튜브를 보면 스마트폰을 소매치기 당했다. 가방을 잃어버렸다. 많은 후기들이 있었다. 남편은 그건 당한 소수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은 아무 일 없이 다닌다고 했지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 나름 스마트폰 커버도 어깨에 매는 줄 있는 걸로 장만하고, 백팩도 소매치기 예방 제품으로 준비했다. 예방이 최선이니까.

그런데, 로마에 도착해보니 로마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붐벼야 소매치기를 하지, 8월의 로마는 사람 보기가 힘들었다. 숙소 주인얘기가 다들 휴가를 떠나서 8월말까지는 로마 시내 전체가 비어있단다. 상점들도 거의 다 문을 닫는다고 했다.

실제로 로마의 주 공항인 피우미치노공항에 내렸는데 그렇게 한가로운 공항은 처음 보았다 . 그래도 그 유명한 이탈리아 로마인데, 아무리 코로나시대라지만 그 시간에 내린 비행기가 우리뿐이었다.

미리 찾아본대로 SIT 공항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딴버스는 티켓부스가 다 있는데, SITbus 만 없다. 다른 창구에 물어보니 그 버스는 없단다 살짝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딴 버스들은 다 버스가 서있고 티켓파는 창구도 있는데, SIT bus 만 없으니, 믿을수 밖에. 할수없이 다른 버스를 탔다.

내가 SIT 를 타려 했던 이유는 다른 버스는 전부 테르미니역 옆에서 내리는데 이 버스만 내리는 곳이 달라서 우리 숙소에 더 가까웠고, 더불어서 테르미니역의 무시무시한 소매치기들도 피할수 있을거라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염려와 달리 이미 얘기했듯이 테르미니역 근처도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우린 한가롭게 가방을 끌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SIT 정류장을 지나며 보니 버스가 서 있는게 아닌가 . 아차 또 속았구나.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 버스를 탄게 잘한거였다. 내가 타려던 버스는 한참을 더 기다려야했는데, 그 버스를 탔으면 통근시간에 걸려 도착시간이 훨씬 더 늦어졌을것 같다.

그렇게 찾아간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곳이었는데, 75세된 은퇴한 할아버지가 자기 아파트를 개조해 반을 쪼개 민박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오래된 건물에 밖에서 인터폰을 누르니, 위층에서 할아버지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들어오라고 한다. 문을 열었는데 문이 너무 크고 묵직해 열린 줄을 몰랐던 거였다. 백년이 넘었다는 건물은 개조해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우리가 묵을 곳은 2층인데, 문 안에 주인집과 우리집 두개의 문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열쇠로 일곱번쯤 돌려야 열리는데 들어와서 또 그만큼 돌려서 잠궈야하고, 안에서 밖으로 나갈때도 그렇게 돌려야 한다는 게 끝까지 적응이 안되었다.

그게 비상구라는데, 무슨일 있을때 그거 돌리다가 일 당하지 않을까? ㅎㅎ

오래된 집이지만 편리하게 개조해 놓고 에어컨도 있어서,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 시내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여서 만족하게 지냈다.

주인은 떠나기 전에 자기집을 자랑겸 구경시켜 주었는데 , 그 집에서 자기가 태어났다고 했다. 집안이 완전 박물관 수준으로 오래된 그림, 장서등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혼자 산다는데, 외로워서 그런지 말을 걸면 끝없이 얘기하고 싶어했다. 할아버지대부터 그 집에서 살았고, 자기는 교사였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그저 발 가는대로 돌아다니며 장 보아다 밥해먹고 그렇게 지냈다 .

사람이 많지 않으니 재미가 덜한 것 같기도 했다. 주인없는 도시에 관광객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트레비분수에만 사람이 많았다.

로마는 생각보다는 매력이 덜하다고 느껴졌다.

온 시내에 개똥이 널려서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쓰레기 수거통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미관을 해치고, 그럼에도 깔끔하다는 느낌은 없고, 여기저기서 지린내도 나고, 역시 두 번 오면 매력이 반감되는걸까. 조금의 환상을 품고 있을 때가 좋았을런지도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