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할머니, 글로벌할머니 되다.
여행 style 을 바꾸다.
"쌀은 부다페스트 에서 사면 되겠고,
커피는 루마니아 가서 사도 되겠네. "
어제 아침, 남은 식료품을 점검하며 남편에게 한 말이다. 이쯤되면 더 이상 global 할 수가 있나 싶다. 내가 말해놓고도 신기하다.
로마, 시칠리아를 거쳐서 산토리니, 아테네에 갔다가, 지금 와있는 곳은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다. 사흘 후엔 여길 떠나 북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로 가서 하루 자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간다.
반도국가인데다가 대륙에 붙은 쪽은 북한이라 섬나라에 사는 것 같은 우리에게는 딴나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하다. 비행기는 물론이고, 버스나 기차로 몇시간이면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다. 안해봤지만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도 가능하겠지.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자도 필요없으니 국경 넘을때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는다.
보통 여행이라 하면 계속 이동하면서 한 곳에 짧게 머물다보니,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바쁘게 돌아다니게 된다. 반면에 길게 여유있는 일정으로 여행하다보면 숙소에서 안나가는 날도 있고, 몸 컨디션이 안좋은 날도 있게 마련이다. 가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넓고 편안한 내 집 놔두고 왜 좁고 불편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또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신이 나고 눈을 반짝이게 되긴 하지만,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오흐리드에서 한달 머물면서 몸도 추슬렀지만 마음도 쉬어서 편안해졌다. 벌써 두달이 되어가는 여행을 돌아보며, 앞으로는 더욱 유연한 일정으로 여유있는 마음가짐으로 즐기리라 다짐해본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요즘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중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떠날 때에 비해서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많이 올랐다. 특히 숙박비가 많이 뛰었다. 우리 여행의 컨셉이랄까 바탕이 되는 생각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곳에서 여행도 하면서 살아보는 것이다. 식비야 우리나라 마트물가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더 저렴하지만,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박비가 많이 올라서 , 그것도 큰 폭으로 올라서, 처음에 후보지로 생각했던 나라들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가지 계획 수정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확실하게 우리가 원하는 여행지의 조건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우린 조용하고 한적하고 작은 도시 보다는, 크고 좀 사람도 많은 도시의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흐리드는 확실히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답답하고, 오래 있어도 볼거리도 할거리도 없다. 마침 여기 왔을 때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잘 쉬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히 심심하고 갑갑했을것 같다.이럴거면 속초에 있는 게 더 낫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있을 필요가 없을것 같다.
한 곳에 머무는 기간도, 에어비앤비에서 4주를 빌리면 많이 할인이 되어 4주를 예약했는데, 한 곳에서 4주는 좀 지루한 것같다. 혹시 또 맘에 꼭 드는 도시를 만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다.
어떤 글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에서 은퇴한 부자들을 위해 소음도 없고, 부족한 것 없이 모든게 충족되는 마을을 만들었는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리는 확률이 더 높았다는 거다. 연구 결과, 스트레스가 전혀 없고 생활에 변화가 없는 것이 치매에 걸리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 한달 가까이 있어보니 , 딱 그런 상황인것 같다. 너무 아름답고 예쁘지만 너무 조용하다는것. 스트레스도, 변화도, 할일도 없는 상황.
우리에게는 좀 더 변화와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의 여행 style 을 바꿔야겠다 .
너무 느리게 말고 ,
조금 더 dynamic 하게, 흥미진진하게.
여행 자체가 이렇다보니 여행일기도 축축 처져서 쓸 맛이 안난다. 쓸 거리도 없고.
한 달간 여기서 움츠렸으니 이제 뛸 차례다.
자, 이제 어디로 튈까?
부다페스트는 계획에 없던 도시인데, 단순히 스코페에서 마침 우리 떠나는 날자에 맞춰서 싼값에 저가항공편이 있었기 때문에 가기로 했다. 몇년 전에 갔을때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 다음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 정하기가 더 어렵다. 아마 헝가리 바로 밑에 있는 루마니아로 갈것 같은데, 기차로 11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아직 고려중이고, 비행기로 흑해연안으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푸틴이 흑해연안에 핵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를 봐서, 굳이 그리로 가야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터키도 생각했는데, 터키는 몇년전에 차로 한바퀴 돌았던 적이 있고, 요즘 사흘마다 물가가 배로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플레가 심하다해서 주저된다.
남편은 이집트에 가고 싶어하는데, 하도 관광객 상대로 사기를 많이 친다고 하니 가기 전부터 지치는 느낌이라 , 굳이 가야하나 엄두가 안난다.
자, 이제 재정비해서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오늘 남편은 동네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하고 왔다.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발 경험은 처음이다.
이발요금이 200 데나르 ㅡ4400원 이라는데, 미안할 정도로 오래 ,정성스럽게 깎아 주더란다. 내가 보아도 참 잘 깎았다. 속초에서 15000원 주고 떠나기 직전에 깎은 것보다 훨씬 낫다.
여기 와서 이발도 해보고 , 여행가방도 새로 장만하고 , 그래도 새로 해본 일이 많네.
여행 skill 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