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 버스터미널에 가니, 우리가 도착했던 토요일엔 문을 닫았던 interbus 매표창구가 열려 있다. 론다 가는 버스도 좌석 지정이 없다. 2시간 반이 걸릴 줄 알았는데 2시간이 채 안걸렸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는 원래 4시에 체크인이 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일찍 도착한다고 하니, 호스트가 4시 퇴근인데 한시간쯤 일찍 나와 주겠다고 했는데, 거의 두시간 일찍 도착해 버렸다.
숙소 근처에서 관광용이 아닌 현지인들이 가는 츄로스집을 찾아서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론다에 츄로스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집에서 현지인들이 츄로스를 아침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찾아가 보니 츄로스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끝났는데 내일 아침 7시에 오란다. 할아버지 혼자 하는 bar 같은 곳으로 맥주 같은걸 파는 집이다.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도 되냐고 하니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는데, 이거 다 눈치로 소통하는거다. 우린 영어 로,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로.
테이블에 앉아서 호스트에게 여기로 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스페인에 오면서 부터 로밍이 시원치 않다. 구글지도로 경로찾기도 잘 안되어서 말라가에서 한 번 로밍센터와 통화했는데 하라는대로 해봐도 역시 잘 안된다. 그러더니 중요한 때에 잘 안터진다. 호스트가 버스터미널로 오기로 했는데 우리가 카페에 있다고 알려야 하는데 마침 로밍이 시원찮아서 연락이 잘 안된다.
계속 시도해 보면서, 자리값도 할 겸 점심도 해결할 겸, 닭튀김과 맥주를 시켰다. 구글 번역도 잘 안되어 , 맥주를 달라고 하니까 못 알아 듣는데, 할아버지가 용케도 냉장고에서 맥주병을 꺼내어 보여주며 이거냐고 하는데, 어딜 가도 굶지는 않겠구나 싶다. 닭튀김과 감자튀김 세트는 마침 밖에 사진이 붙어있길래 사진을 가리켜서 시켰다.
로밍이 잘 안되니 전화도 안되어서, 문자로도 보내보고 , 에어비앤비 앱으로 메시지도 보내보고 하다가 , 할아버지한테 와이파이가 있나 묻고 있는데 호스트가 찾아왔다. 아마 이리 저리 시도하던 중에 메시지가 갔나보다. 열쇠를 받고 론다 소개도 좀 받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문닫고 퇴근한다. 호스트를 보더니 우리에게 내일 아침 7시에 츄로스 사러 오라고 얘기해 달라고 한다. 7시부터 여는걸 보면 아침으로 먹는게 맞는가보다. 1시까지 판다고 한다.
론다 버스터미널 ,
츄로스집
모양은 이렇게 생겼는데 맛은 부다페스트의 랑고스와 똑같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숙소는 새로 단장해서 깨끗하고 모든게 새것이고 현대적이다. 이번 여행 에 묵은 숙소들은 오래된 구옥을 내부만 현대적으로 고쳐 놓은집이 대부분이었다. 부다페스트 집은 200년이 넘은 집이라고 하는데 , 이번 여행에선 숙소를 대부분 올드타운 안에 중심지에 얻었기 때문에 ,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다 100년 이상은 되었을 것같다.
론다 시내는 굉장히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래된 집들도 페인트칠이라도 다 깨끗하게 해놓았다. 올드타운 안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버려진 집이 많은 도시도 있는데 , 론다는 올드 타운도 잘 정비가 되어 있다.
짐을 풀고, 누에보 다리까지 우선 맛보기 산책을 나갔다가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아뿔싸 그런데 도마가 없어졌다. 그라나다에서는 숙소에 있는 도마가 깨끗한 새것이길래 내 도마를 안 꺼냈는데 , 아마도 알리칸테에 두고 왔나보다.
다행히 이집은 에어비앤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도마도 깨끗해서 잘 사용했다. 앞으로 어떨지 몰라서 도마를 사기로 했는데, 스페인은 수퍼마켓 규모가 엄청나게 크지만 식품의 비중이 크고 , 화장지 세제 같은게 조금 있을 뿐 도마 같은 부엌용품이 없다. 없는게 없는 우리나라 슈퍼마켓에 익숙한 나는 당황스럽다. 마침 슈퍼 앞에 가정용품 마켓이 큰 게 있길래 들어가 보니 그릇을 비롯한 주방용품들은 다 거기에 있다. 사고 싶은 책받침형 도마는 없지만 대나무 도마가 사이즈가 적당한게 있길래 샀는데, 집에 와서 포장을 뜯고 보니 면이 너무 거칠어서 틀렸다. 그래도 아쉬운대로 쓸 수밖에.
누에보 다리나 올드 타운이나 블로그에서 많이 본 풍경들이었는데 , 사흘째 되는 마지막 날, 도마를 사러 나갔다가 계곡을 바라보는 테라스 산책길을 가게 되었다. 난 여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무감동맨인 남편도 연신 여기 풍경은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절벽 아래 풍경과 절벽 위 산책로 모두 다 환상적이다. 산책로를 따라 단독주택들이 늘어서 있는데, 너무 맘에 들어서, 나 이 집 사달라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아무 대답이 없다. 너무 터무니 없어서 일까, 아니면 속으로 돈계산 하고 있었을까? 아무려나 나 혼자 이 집을 사면 정원에서 산책로로 통하는 쪽문을 내야지 하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꿈꾸는 건 자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