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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29. 2017

언젠가 너로 인해

 우리 집 멍멍이는 처음 내게로 오던 날, "기린"이라는 늠름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름 대신 "뚱땡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제 고작 2년을 산 멍멍이는 자신이 말티즈였다는 사실을 잊은 것 마냥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3.7kg를 넘어섰다. 다른 말티즈 평균이 2-3kg이라고 하니 퍽 우량아인 셈이다. 이 아이에게 기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던 때, 2kg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많이도 자랐다.


 이제는 자신이 무거운 것을 아는 것인지, 저울에 달아보면 시무룩해져서는 소파 밑으로 쏙 들어간다. 지금처럼 무럭무럭 자란다면, 아마 곧 소파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질 날이 올 것 같다. 지금도 소파 밑으로 들어가다가 머리를 콩하고 박고는 한다.


 이렇게 자란 이유는 다 식탐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자신도 맛을 보아야겠다며, 옆으로 와서는 '나도 달라- 멍!' 하고 말하듯 한 번 짖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 뚱땡이는 햄버거와 함께 온 감자튀김을, 잘 튀겨진 탕수육과 치킨을, 피자 위에 토핑 된 각종 고기와 치즈를, 쌀과 함께 맛있게 익은 완두콩을, 케이크의 빵을 잘도 받아먹었다. 일단 짖은 주제에 취향은 있어서, 마음에 안 드는 음식은 퉤 뱉어놓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이 아이의 몸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주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리고 못 받아먹었을 때 시무룩해있는 표정이 안타까워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내 앞에 앉아 꼬리를 흔들며 짖는 이 아이를 보면, "그래, 차라리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일찍 죽자-" 생각하게 된다.



 두 살이 된 뚱땡이가 가장 따르는 사람은 엄마다. 아무래도 간식을 가장 많이 주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데려왔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던 나보다 엄마를 다 따르는 게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어느 하루, 외출 준비를 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엄마가 나가고 닫힌 현관 중문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멍멍이 옆에, 가만히 같이 앉았던 날이 있다. 내가 옆에 앉아 있음에도, 기린이는 중문 앞에 앉아 중문 너머로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자동으로 켜졌던 현관 등이 꺼지자, 중문 창에는 가만히 앉아있는 기린이와 내가 반사되어 보였다. 이 아이는 중문에 비친 자신을 얼마나, 몇 번이나 바라보았던 걸까, 가만히 앉아있는 멍멍이를 끌어안았던 날이 있다. 언젠가 어느 순간, 너로 인해 참 슬프겠구나, 몇 날은 아프겠구나, 생각했던 그런 날이 있다. 어느 날 언젠가, 네게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일찍 죽자고 했던 말을, 그런 날을 많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그런 하루가 있다.


 우리 뚱이는 매일매일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내 곁에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거실에 있을, 아마도 소파 밑에 숨어있을 우리 집 멍멍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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