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구인기
매년 동남아시아로 다이빙을 하러 간다던 분이 떠올랐다. 좋은 사진기를 들고 가서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올해 여름도 어디론가 다이빙을 하러 떠날 것이라고 했었다. 평소의 나라면 다이빙 사진을 보여달라고 땡깡을 부렸을 법 한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면접관과 면접자의 관계였으니까. 나는 편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 편한 것은 나뿐이었다. 내가 면접관이었으니까.
구인 공고를 올렸었다. "죽어가는 스타트업 대표를 살려주세요."라는 장난스러운 내용으로 시작하는 공고였는데, 고작 이틀 사이에 서른 통 정도의 메일을 받았다. 구인 공고의 꼬리에 "메일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답장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작성해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틀 내내 이력서를 검토하고 답변을 작성해야 했다.
"○○님이 보내주신 내용을 보니, 지금까지 하신 일들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저희가 만나 뵙기 전에 제가 이러한 부분을 조금 더 검토할 수 있도록 이 부분만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구직하시는 분들과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공유받던 팀장님이 한 마디 했다.
"왜 연애편지를 쓰고 있어요…?"
정말로 내게는 한 분 한 분과의 메일이 연애편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말이 좋아서 스타트업이지, 우리 바로 옆에서 하루하루 매출을 걱정하시는 식당보다 못한 수준인 우리 회사와 함께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보내주신 분들이 아닌가,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답변을 주고 싶었다. 구직자분이랑 연애 기분 좀 내면 어때, 하고.
구인 공고를 올려두었던 이틀 간은 정말 힘들었다. 오전 두 시부터 일어나서 여섯 시까지 이력서를 검토하고 메일을 보냈다. 돌아온 답변을 보고 다시 한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을 보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서 몇 분께는 한 번 만나 뵙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일을 엄청 벌려놔서 잠도 잘 못 자고 있는데, 이력서를 검토하느라, 다시 한번 답변을 검토하느라, 답변을 쓰느라 새벽 두 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나를 보며 함께 일을 하는 친구가 이야기했다.
"그냥 답변하지 말아요!"
주변의 만류가 있음에도 차마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이, 그 과정에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서 이력서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메일을 보냈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꼼꼼하게 읽어보고 답변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달았다. 죄송하다고 답변을 보낸 분들도 나를 응원해주었다. 이번에는 같이 하지 못하지만, 하시는 일이 모두 잘되기를 응원한다고 했다.
메일을 주고, 받고, 2주일 간 구직하시는 분들과 연애편지를 나눴다. 그 사이 몇 분을 만나 뵈었고, 두 시간 정도씩 이야기를 나눴고, 많이 웃었고, 또 많이 고민했었다. 용건과 답만 나눈 것이 아니라, 연애편지를 나눈 것이 큰 원인이었다. 나는 구직자와 연애하는 기분으로 메일을 주고받은 벌을 그제야 받게 되었다.
매년 동남아시아로 다이빙을 떠난다던, 방수 카메라가 좋아서 물속에서도 예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던,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서 요가 수업을 듣고 출근을 한다던 분이 떠올랐다. 불편한 소식을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서두를 작성하고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만나 뵈어서 정말 좋았었다고, 앞으로 하시는 일이 모두 잘 되시기를 응원한다고 메일을 쓰던 날의 내가 생각난다.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기 위해서 고민하던 내가, 메일을 다 작성해놓고 보내기 버튼이 잘 안 눌러지던 그 날의 감정이 이따금 선명하다. 그날 아침, 내 메일을 받고 나서 눈물이 많이 났었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인간적으로 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꼭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날 아침, 나는 감정선에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남들은 그렇게 쉽게 면접관이 되는데, 나는 고작 이게 어렵다.
7월이다. 벌써 날이 많이 더워졌다.
산책 겸 방문한 미술관에서 바다 영상을 보고, 어느 한 분은 동남아시아의 예쁜 섬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수가 잘 되는 사진기를 들고 바닷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사진 한 번 보여달라고 편하게 생떼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왜 구직자와 연애편지를 쓰지 않는지 잘 알게 되었으나, 앞으로도 나는 다른 구직자 분들과 많은 연애편지를 쓰게 될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메일을 보낼 것 같다. 왕바보인 나는 학습능력이 조금 부족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