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꿈에서 우리 강아지를 보았다. 꿈에서 조차 우리 강아지는 건강하지 않았기에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도 나는 우리 집 강아지, 뚱이가 없음이 낯설다.
이제야 겨우 토해내는 말이지만, 우리 강아지는 지난 11월 세상을 떠났다. 3주일이 지났다. 미루고 미루었던 마음의 숙제를 미처 끝내지 못한 채 보내서, 나는 아직도 숙제를 밀린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오늘처럼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 더 이상 뚱이가 없음이 실감 난다. 뚱이가 아직 눈이 보일 때까지는, 이 시간 즈음이면 투실투실한 발로 소리를 내며 내 방으로 찾아오곤 했다. 침대 위에 풀쩍 올라와, 소리에 눈을 뜬 내 코를, 볼을 핥고는 발밑으로 내려가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잠을 잤었다. 그 과정에서 어쩜 그리도 요란한 소리를 냈던지, 평소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의 잠을 방해하는 너를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 밤들이 벌써 아주 오래된 일처럼 희미하다. 겨우 몇 달 지났는데, 불투명 유리를 몇 겹이나 겹친 것처럼 어슴푸레하다. 앞으로 한 주,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나, 뚱이와 함께한 시간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이, 그래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 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이토록 모순된 사고를 한다.
눈을 뜨면 회사에 나가고, 밤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은 고단하지만, 덕분에 마음이 힘들지는 않다. 다행히도, 불행히도 나는 대체로 우리 뚱이를 잊고 살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꽤 아무렇지도 않은 생활을 하고 있고, 불행히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종종 사람들이 우리 뚱이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곤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렇게 한밤 중에 눈이 뜨이는 밤이면, 아프다가 떠난 강아지가 생각나 남은 밤을 설치곤 한다. 따뜻한 혀로 내 코를 핥아주던 우리 뚱이가 보고 싶다.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 주었던, 가만히 내 옆에 앉아 있었던 뚱이를 가만가만히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코를 맞대고 싶다. 겨우 그걸로 나는 아무리 힘든 하루도 씩씩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종종 나는 뚱이를 무릎에 앉히곤, '이제 3년이나 사람이랑 살았으니, 사람 말도 해야지?'라고 물어보곤 했었다. 만약에 언젠가,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나는 너로 인해 큰 위로를 얻었는데, 너는 나로 인해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 말로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때도 따뜻한 혀로 내 코를 핥아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가기 전에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우리 집 하얀 털뭉치가 보고 싶은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