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장황한 독신선언
친한 친구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동생이 결혼했을 때도 결혼은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게 결혼은 남반구에서는 여름에 신년을 맞이한다는 말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내 또래 사촌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동생마저 결혼을 한 다음부터 엄마는 벌써 3년 동안 도대체 큰 애는 언제 결혼을 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유명하다는 철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성당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면서 우상 숭배하면 천국에 못가-'라고 비죽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자식 결혼운이 천당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엄마. "내년에는 결혼운이 있대", 라는 말을 3년 동안 듣는 동안 결혼식은커녕 혼담이 오가지도 않았으니, 용하다는 그 점집은 나 때문에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간판을 내리지는 않더라도, 그 유명한 신통함이 나로 인해 조금은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결혼운이 있다고 이야기를 할 거면, 사람을 봐가면서 말했어야지.
한 살을 더 살았다. 아빠는 내 나이에 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단다. 이듬해 내가 태어났단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육아는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였는데,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엄마가 무심코 한 이야기에 현실이 되었다. 단 한 번도 혼자 살아간다는 것에, 늦게 결혼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는데,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 <장가갈 수 있을까>를 구슬피 노래하던 커피소년, 노아람 씨가 결혼했다는 기사를 읽고도 그랬는데, 내 나이에 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아빠 이야기에 무덤덤했던 감정에 동요가 생긴다. 이제 나도 결혼을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결혼해야지!', 다짐하게 된다. 이유도 없이, 원인도 모른 채 그렇게 된다.
2년 전에 친구랑 함께 길을 걷다가, 재미 삼아 사주를 본 일이 있다. 엄마의 점괘와는 다르게, 내 사주를 봐준 분은 내게 2019년에 결혼할 운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거라는 사족을 달아 복채를 꺼내는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더랬다. 올해는 2019년이다. 올해가 지나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니, 사명감을 갖고 올해는 결혼을 해야겠다. 그 전에 결혼할 사람 찾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