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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Sep 15. 2019

매일의 숙제


 며칠 전, 아, 며칠 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오래되어버린 일이다. 한여름은 아닌, 그렇다고 늦여름도 아닌, 여름의 끝자락으로 접어들 즈음의 어느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떠있는 모습을 보았다. 회사에서 나왔는데 아직 해가 떠있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나머지, 회사 메신저로 자랑을 했다.

 "우리 동네에 왔는데 해가 떠있어요!"


 집에 돌아오면 얼마나 늦었던 꼬리를 흔들며 나와주던 강아지가 있다. 잘 다녀왔냐고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오던 강아지가 있다. 집에 들어온 사람이 나인 것을 확인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강아지가 있다. 가끔은 반갑다고 안아달라고 매달리던, 또 가끔은 돌아온 나에게 간식을 내놓으라고 짖던 강아지가 있다. 그런 강아지가 있다. 기린이라고 불렸고, 마리라고 불렸고, (멍)청이라고 불렸고, (못)난이라고 불렸었던,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말티즈라는 것을 망각하고 4kg가 훌쩍 넘을 무렵부터 뚱이라고, 뚱땡이라고 불린 강아지가 있다. 겨우 4년 조금 넘게 사는 사이에 참 많은 이름으로 불린 이 강아지는 요즘 내가 집으로 돌아와도 잘 나와주지 않는다.


 요즘 나는 퍽 바쁘게 산다. 오전 12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모두가 잠든 집에 돌아오는 것이 꽤나 익숙해졌다. 그리고 여섯 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도 뚱땡이가 짖으며 쫓아 나오지 않는 것이, 꼬리를 흔들며 매달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 슬프지 않게 되었다.




 5월 말, 우리 뚱이는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아침에 잘 걷지 못했던 아이는, 오후 시간이 되어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었고, 저녁에서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더랬다. 그리고 치료를 하더라도 예후가 좋지는 못하다는 이야기까지.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한 번만 더 걸을 수 있기를, 한 번 더 내게 와줄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강아지는 먹을 것에 대한, 심지어는 약까지도 가리지 않는 강한 의지로 병이 많이 호전되어 다시 뛰고, 걸을 수 있게 되고, 사람이 찾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나갈 수 있게 되고, 치킨을 먹을 때면 한 입만 달라며 짖을 수 있게 되고, 그리고 종종 '뚱땡아-'라고 불리는 대신 '으이구.. 돈땡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평균적으로 오래가지는 못한다'는 말은 매일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집에 왔는데도 해가 떠있다고 자랑했던 그날, 뚱땡이는 내가 집에 왔을 때 쫓아 나오지 않았다. 8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8월이 지나고, 9월이 지나면서 뚱땡이는 그토록 좋아하던 장난감을 가져다주어도 시큰둥하게 되었다. 몇 차례 발작을 일으켰고, 그 사이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뒷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개학 직전 잔뜩 밀린 방학 숙제를 마주한 여름의 끝자락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랬었지.


 나는 방학숙제를 최대한 안 하고 베짱이처럼 놀다가, 개학 즈음에 울면서 숙제를 하는 아이였다. 모아 놓은 신문지의 날씨를 일기장에 옮겨 적는 아이였다. 구몬 선생님이 오기 직전에서야 잔뜩 쌓인 문제지를 풀면서 후회하는 아이였다. 그것을 몇 년이나 반복했었다. 똑같이 고통스럽고, 후회되는 것을 반복했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네. 매일 조금씩 해두었어야 할 숙제를 잘해두지 못해, 나는 또다시 많이 울게 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성실하게 숙제를 하는 버릇을 잘 들여두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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