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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May 03. 2020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라

나는 드라마를 꽤나 즐겨보는 편이었다. 요즘은 통 시간이 나질 않아, 좀처럼 드라마를 챙겨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여유로워지면 밀렸던 드라마를 모두 보겠다며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고 있다.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드라마가 이제는 너무 많아서, 이번 같은 연휴 한두 번으로는 어림도 없을 지경이다. 언젠가 안식년이라도 맞이하지 않는다면, 버킷리스트에 담아두었던 드라마들을 보는 건 무리겠다.


최근에는 트레드밀에서 운동하는 동안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데, 절정을 달리던 전개가 절정의 절정에 들어섰다. 소리 지르고, 울고, 서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헤어지고. 그들이 싸우고, 눈물 흘리고, 눈물을 닦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삶에는 이제 드라마 같은 것은 없구나, 생각했었는데. 휴일에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 터였는데, 그래서 광고 메시지겠거니, 고개만 슬쩍 돌려 확인했던 메시지에 먹먹해졌다. 하루 종일 달리고 보니, 오늘 하루 20km를 달렸단다.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드라마에서 그 어떤 갈등 관계가 어떻게 그려져도 꾹 참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드라마의 끝에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망가진 관계도 이야기의 끝에서는 갈등의 극단에 선 사람들이 모두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간의 모든 오해가 풀리고, 오해에 뿌리를 내리던 서로 간의 악감정이 눈처럼 녹아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악감정이 녹아내린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가 싹 핀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보았던 그 모든 드라마에서 그랬듯,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최대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결말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모든 오해가 풀린 채, 모든 문제가 해결된 채, 한 때는 서로 등지고, 서로로 인해서 상처 받던 이들이 웃으며 한 곳에 모여서 매듭지어지는 것을 알기에, 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종종 드라마 같은 삶은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일들, 나의 사고방식, 나의 행동 같은 것이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람 같다고 했다. 아아, 어떻게 보면 지난 내 이야기들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드라마 같은 삶과 내 삶의 사이에는 선뜻 넘을 수 없는 담이 하나 놓여있다는 것을, 오히려 나는 드라마 같은 삶의 이쪽 건너편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내 삶의 드라마에 비유하는 이들은 알고 있을는지.


엉켜버렸던 끈들은 모두 망가트려왔던 내가, 위태로웠던 관계의 끈을 모두 놓아왔던 내가, 오해만 잔뜩 사고 풀어낼 노력을 하지 않았던 내가 살아온 삶은 드라마와는 정반대 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삶이 정말 드라마에 비유될 수 있었더라면, 오해와 갈등이 많았던 내 관계가 이토록 황량하진 않았으리라. 내 삶이 정말 드라마였더라면, 고개를 들어 문득 보았던 메시지가 분명 반갑고 고마웠으리라. 하지만, 내 삶은 드라마 같은 것이 아니기에, 나는 여전히 황무지에 서있고, 반갑고 고마웠어야 할 메시지에 오히려 먹먹해질 뿐이었다.


드라마처럼 살고 싶다. 모든 오해와 갈등이 거짓말처럼 다 풀렸으면 좋겠다. 내 작은 행동과 말들이, 언젠가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마주해야 했던 일들과 내 감정들을 언젠가 모두가 알게 되었으면, 그래서 나를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 끝에 나, 지금껏 등 뒤로 돌아섰던 모두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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