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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08. 2020

앵두

초봄, 봄, 그리고 초여름.

겨울이 가고 새순이 돋기 시작할 무렵, 새로 이사 온 집 마당에 앵두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12월에 처음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가지만 앙상해서 어떤 나무인지 잘 알지 못했는데, 잎이 나고 꽃이 피니 앵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초여름이 되니 탐스러운 앵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다음 주말이 되면 가지마다 맺힌 열매를 한 아름 따다가 앵두청을 담가봐야지. 켜켜이 잘 담근 앵두청은, 여름이 끝날 무렵 차로 내어 마셔야지. 예쁜 병에 앵두청을 담아 예쁜 마음으로 선물해야지.

최근에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상황에 가깝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최근의 나는 깊게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

늦게 잠들고 일찍 깨어나는 삶에서 일만 하기는 싫다는 이유로 새벽에 일어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니, 이제 '쓰기'만 잘하면 되려나!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나는 통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더 멀리 높이 가고 싶은데, 마음이 무거워 자꾸 가라앉는 것 같아서,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비워가고 있다. 언젠가 내 마음을 모두 비웠음에도 더 이상 떠오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걸 연료로 삼을 수 있을까, 뭘 더 비울 수 있을까. 가진 것을 다 소진한 상태로 더 나아가지 못해서 모래 바다 위로 떨어지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제는 돌아갈 곳도, 예쁜 마음을 전달할 이도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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