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은 위에서, 참는 건 아래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던 전 회사에서 퇴사 후 바라고 바라던 외국계 대기업 이직에 성공한 나는, 이곳이 천국이 아닐 것은 알았으나 그래도 심적으로 더 힘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내가 먼저 예의바르고 착하게 행동하면 잘 지낼 수 있겠지' 싶었다. 물론 내 오산이었다.
현직장, 내가 몸 담고 있는 우리 팀은 연차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공휴일에도 일을 해야하는 구조다. 이 치명적인 단점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다스려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공장 생산을 예측하여 판단해야하는 업무특성 상 변동이 매우 잦다. 그런만큼 물류팀과의 소통이 필수다. 나는 고객중심, 매출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조정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건 "왜 자꾸 취소하고 번복하냐"는 날선 말투다. 팀에서는 매출을 올리라고 압박하고, 다른 팀에서는 보수적으로 진행하라 타박한다. 양쪽에서 눌리는 샌드위치의 입장이다. 물류팀의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남의 기분까지 짓밟아도 되는 걸까?
가장 서러운 건 혹여 그들이 잘못을 하더라도 뭐라 한 마디 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그들 대부분 나이가 많고 연차가 높아 조직내 '경력자'의 무게를 갖고 있다. 반면 나와 또래 동료들은 요청사항이 반영되지 않고 감감무소식이어도 그저 메일을 한 번 더 보낼 뿐이다. 그마저도 '확인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붙인다. 서로 녹봉(?) 받는 입장에서 굳이 기분 상해가며 일할 필요 없으니 말이다. 신속하게, 제대로 협업이 되지 않으니 업무 의욕도 없고 그들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반대는 아니다. 잘못 하나하나 따져가며 지적하는 메일을 보내거나 한숨을 푹푹 쉬고 상대의 기분을 상할대로 상하게 하는 말투로 그날 하루를 망친다. 심지어 지난 번엔 본인의 실수로 잘못된 일을 가지고 나에게 언성을 높이며 짜증을 냈다. 마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느낌으로.
본인보다 연차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던데, 역시 사회생활은 짬이 중요한가. 며칠 전 동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하다 누군가가 "그럼 우리는 이 답답한 걸 어떡하냐"고 토로했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윗사람들의 부당한 지적과 짜증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마음 다스리기뿐이다. 물론 연차에 따라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의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너무나 크다.
과연 언제까지 좋게 좋게 넘어가야 하는 걸까.
'나만 참으면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정작 다친 건 내 마음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속에 오늘도 그저 출근한다. 그런데 이 다친 마음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어렵게 이직한 이곳에서 결국 또 '퇴사'로 치유해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