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빠 지금 응급실 가고 있어

가장 당연했던 존재가 흔들리던 순간

by 열닷새

축하가 한순간 걱정과 불안으로


2주 전 토요일, 남자친구 생일 기념으로 케이크에 초를 꽂아 축하해주기 위해 자리를 옮기던 중이었다. 갑자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대뜸 "오늘 늦니?"라고 물어보셨다. 부모님께서 굉장히 보수적이신 터라 이번에도 핀잔을 주기 위해 물어보신 거라 생각했다. 살짝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아직 케이크 축하를 못해줘서 자리 옮기느라 좀 늦을 것 같아. 왜?"라고 했다. '지금 9시반인데 언제 들어오려고?'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알았어."라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셨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왜 그러냐고 한 번 더 여쭤봤다.


- 아니야. 축하해주고 와.

"왜? 뭔데?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니, 왜?"

- 하... 네 아빠 지금 응급실 가고 있어.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이소에서 물건을 계산하던 남자친구에게 돌아가 "지금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자친구는 혼란스러워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이끌어주고 다독여주며 병원을 향해 다급히 차를 몰았다.




무슨 돌기요? 충수돌기?


그 주 내내 아빠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응급실에 가신 문제의 그 토요일은 작은 아버지의 환갑 기념으로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그날 아침 아빠는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다녀오셨고 모임에는 못가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사라지지 않은 복통과 함께 몸 전체가 그야말로 '덜덜덜' 떨리는 오한 증상을 겪고 응급실로 가셨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던지, 아빠는 차에 탄 이후의 기억이 없다고 하셨다.


새벽 2시까지 긴 기다림 끝에 들은 병명은 충수돌기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조직이었다. 맹장염의 일종으로 아빠는 증상이 매우 심해 대장까지 염증이 퍼진 데다가 충수돌기에 천공이 생겼다고 했다. 의사는 우리보고 선택을 하라고 했다. 지금 당장 큰 수술을 실시하여 대장을 잘라내서 봉합하거나, 입원해서 염증을 조금 가라앉히고 작은 규모의 수술을 진행하거나. 큰 수술이라는 말에 겁을 먹은 우리는 입원 후 항생제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결국 아빠는 현재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입원중이시고 오늘(월요일) 퇴원 예정이다. 한 달쯤 뒤에 경과를 보고 다시 수술하기로.




하루하루 무사히 보낼 수 있음에


그날 병원으로 향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가 처음 아빠의 복통 이야기를 듣고는 친할아버지의 직장암 증상을 떠올리셨다. 할아버지도 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고. 혹시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가장 컸다. 평소 후회없이 해야하는 도리 이상으로 효도를 해왔다 생각했음에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빠에게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만 생각났다. 응급실에서 만난 오빠는 "이제 부모님 연세는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들릴 일만 남았어."라고 했다.



며칠 전 엄마가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지 또 한 번 느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나갔다’는 말이 이제는 얼마나 감사한 말인지 안다. 하루를 정리하며 이불을 덮고 눈감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안다. 앞으로는 그 당연한 일상을 조금 더 소중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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