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에서 누군가 팔을 잡아당겼다

출근길, 그 예민함의 끝에서

by 열닷새

밀지 마세요!


굳이 나누자면 나는 사고방식이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염세적인 시각이 매우 짙어졌다. 작은 소리, 부득이한 잠깐의 터치 등을 참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이것이 최고조인 어떤 날은 건들기만 하면 싸울 기세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했다(특히 출근길에).


내가 이용하는 지하철 라인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출퇴근길 이용객 밀도로 유명하다. 어떻게든 타기 위해 무리해서 몸을 들이 밀고 출입문의 윗부분을 잡아 그냥 몸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압사로 인해 큰 참사가 발생했던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건장한 남성의 경우 힘이 어찌나 센지 그들의 의사에 따라 내 몸이 휘청거리는 게 정말 기분 나쁘다.


그렇게 급했으면 일찍 나올 것이지.


서론이 길었지만 무튼 나는 이러한 이유로 지하철을 탈 때 내가 누군가를 밀지 않고도 올라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없다면 굳이 타지 않는다.




타셔도 돼요


매일매일 점점 더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게 버거워지던 약 6개월 전의 어느 날, 너무나 충격적이라 뇌리에 박혀버린 일이 있었다. 그날 역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길에 힘이 쭉 빠진 채 서울행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 내 앞사람까지 전동차에 탑승하니 아직 한 사람의 공간이 남은 듯 보였다.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올라탔는데 생각보다 좁았는지 먼저 탑승한 사람들을 밀게 되었다. 죄송한 마음에 민망함을 느끼며 다시 내리던 찰나 누군가 내 팔을 휙 낚아챘다.


굉장히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한 여성분이 내 팔을 잡고 나를 본인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조그맣게 "타셔도 돼요."라고 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어벙벙하고 있던 찰나 전동차 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혔는데 그 분은 그때 손을 내 허리로 가져가 더 끌어당겨주며 문에 닿지 않게끔 해주었다. 놀라움, 고마움 등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채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 상태에서 미안함을 더욱 크게 느꼈던 건 뒤에 딱 붙은 그 여성분이 숨을 가쁘게 고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공황이 온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다음 역에 도착했고 그 분은 빠른 걸음으로 하차했다.




꾸역꾸역 탄다고 소리지르고 화내는 상황만 보다 찰나의 배려를 겪으니 좋은 의미로, 하루종일 기분이 묘했다.

사회적 약자도 아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굳이 호의를 베푼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충격적으로 신기했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일을 겪은 후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예민해져 사람이 싫어지는 출근길에 마음가짐을 다잡자는 다짐을 했지만, 지금도 스스로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 수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듯하다.


그래도 다음에 이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배려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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