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웃긴 드라마의 주인공이 나라니
남자친구(이제는 전 남자 친구인)가 결국 헤어짐을 고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지난 4월 말 가까스로 남자친구를 설득하여 다시 만나기로 한 후 하루하루 불안한 날을 보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스킨십과 애정표현이 줄어드는 그 사람을 보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일요일 밤엔 이런 고민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 사람과 계속 만나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혼자 사랑을 갈구하는 관계를 절대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고민했다. 대신 이 사람이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게 조금 해결되면 그때 이야기를 해보자, 나도 당장 이별을 마주하기 두려우니 그때까지 시간을 좀 벌어보자 싶었다.
그 사람은 지난 주말 동안 상황이 더 어려워졌고 정말 힘들어 보였다. 토요일 데이트 중에 현재 상황이 버겁다는 티를 많이 냈고 원래 만나기로 했던 일요일에는 뜬금없이 '점심 먹고 잠깐 만날까?'라고 하여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주말엔 으레 만났으니 갑자기 당일에 만나자고 하진 않았는데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여자의 촉이란...
도저히 기다리지 못하겠어서 내가 차를 끌고 그 사람의 집으로 향했는데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대로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날은 유독 더 힘들어 보였고 나로부터 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비참하고 힘들다. 특히 우중충한 남자친구 자취방에서 분명 함께 있는데도 느껴지는 외로움이 나를 좀먹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그날을 그냥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일요일 데이트에서 서운한 게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그렇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후 월요일 아침에는 친오빠에게 조만간 헤어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 내려 그 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으레 물어보던 "잘 잤어?"라는 대화 끝에 둘 다 잠을 설쳤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갑자기 퇴근 후 만나자고 했는데 다시 느낌이 이상해 이유를 물었고 그냥 저녁 같이 먹을까 한다는 대답이 썩 믿기지 않았다. 왠지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고 캐물으니 결국 입이 잘 안 떨어지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말을 하려는 게 맞다고 했다.
그날 내내 회사에서 눈물을 시도 때도 없이 흘렸다. 그리고 겨우 겨우 버틴 후 그 사람을 만났는데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울지는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갔던 곳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너무 잔인하다 느꼈는데 본인도 아니다 싶었는지 그냥 근처의 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많이, 내내 울었다. 약 500일 동안 만나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나를 돌봐주지 못했다고, 회사 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최근에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위로도 못해줘 너무 미안했다고. 지금의 나는 충분히 예쁘고 직장도 좋은 곳을 다니고 있으니 자기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의 첫 연애였던 만큼 본인이 좋은 기준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았냐며 서로 애써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자기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본인을 너무 짓눌러서 심적 여유도 없고 그 상황을 뛰어넘을 만큼의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회사 일로 힘들어하는 게 보이는데 그걸 알면서도 위로해 주거나 돌봐주지 못해 둘 다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 많이 버거웠던 듯했다. 나 역시 우리가 첫 이별 위기 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고 헤어짐을 생각했다고, 언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는 괜히 미안해하고 걱정했다며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웃었다.
그 사람은 미련이 넘쳐 보이는 행동을 했다. 첫 이별을 경험하는 나는 이 순간이 지나면 서로 몰랐던 때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어서 나중에 마음이 다 정리되고 나면 친구로 지낼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너무 좋아했어서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악수하자고 하길래 손을 잡았는데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내 스트레스 역치가 낮은 게 걱정된다며 앞으로 꼭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평소에 가던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을 택하며 집으로 데려다주었는데 그냥 지나갔어도 되는 신호를 천천히 가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부탁이 있다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고 했는데 "왜 내가 연락할까 봐?"라고 물으니 본인이 연락할까 봐 그런다고 했다. 내려서 안아주는데 그때도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정말 많이 좋아했다고 했다. 둘 다 이렇게 미련이 남아있고 마음이 있는데 외부 상황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마음이 아팠다.
그 사람은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하고 이별 자체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이 이별이 가장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 존중했고 담담하게 속마음을 전하려고 했으며 서로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헤어진 후에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생각이 들면 분명 본인도 힘들어하고 있을 테니 억울해하지 말라고 했다.
이날 이후 나는 매일 눈물을 흘리고 있고 그나마 회사 생활을 하며 정상인 척 노력했던 평소와 달리 연휴인 오늘은 더 힘든 기분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회사를 기다리는 꼴이라니.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었던 것들로 기억이 가득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고 앞으로 사람을 만나 정을 주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이렇게 힘든데 관계를 어떻게 맺나 걱정이 앞선다.
오락가락 기분이 들쑥날쑥해서 충동적으로 전화를 해볼까 카톡을 보낼까 고민하는데 그 모든 건 일단 시간을 좀 가진 후의 문제고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 사람도 본인의 사정으로 많이 지쳐서 내린 결정인데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지금, 감정적으로 붙잡아도 여자친구라는 존재가 여전히 부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짧으면 2~3주, 길면 2개월 나도 천천히 스스로의 시간을 가지고 그에게도 그럴 시간을 준 후 상황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 나도 여전히 그를 원한다면 조금씩 연락을 해볼까 싶다. 나는 일단 내 감정을 잘 추스르고 500일 전 내 생활에 집중했던 그때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천천히 회복하며 첫 이별을 겪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