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상과 현실은 달라
그렇게 바라던 미국 생활, 인턴을 마친 후 나는 생각보다 그 기회를 쉽게 놓아버렸다.
미국에서의 거주를 희망하는 사람 기준으로, 인턴으로 지내다 보면 여러 가능성이 생긴다. 일단 자발적으로 미국에 인턴을 갔다는 것부터 타국 생활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구직의 부담이 줄어든다. 업무를 잘 수행하고 대인관계를 잘 유지해 왔다면 기본적으로 회사는 기회를 주게 마련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인턴을 마칠 즈음 회사로부터 취업 비자 권유를 받았다. 대학교 졸업 전에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요즘 같은 구직난 시대에 얼마나 큰 행운인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직후로 이민 정책이 크게 바뀐 점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내가 미국에서의 생활을 주저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가장 먼저, 내 몸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즉, 안전에 확신이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총기 문제는 차치하고 가장 걱정되었던 것 중 하나는 병원이었다. 의료비야 회사에서 들어주는 보험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가입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더 큰 걱정은 언어적인 부분에 있었다. 갑작스레 아파서 응급실에 가거나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내 아픈 부분을 어떻게 영어로 설명해야 할지, 미국 의료진이 말하는 현재 내 몸의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어떻게 이해할지 막막했다. "쿡쿡 쑤셔요", "싸-하게 아파요", "속이 니글니글하고 메스꺼워요" 이런 미묘한 표현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토종 한국인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통신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웠다. 워낙 땅이 넓으니 구석구석까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알지만... IT강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지하철은 물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터넷이 끊긴다는 사실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함께 근무했던 차장님, 차장님의 남편 분과 함께 도심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아웃렛에 방문한 적이 있다.
어김없이 터지지 않는 인터넷에 반쯤 포기한 상태로 아웃렛에 도착하고서야 가족들과 연락을 했다. 제품 사진을 보내며 아버지 선물을 고르느라 한창 정신없던 중 휴대폰을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렸다. 액정이 깨지기는 했지만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고 인터넷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 증상이 휴대폰이 고장 나서 그런 건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오후 5시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긴가민가 했고 하숙집에 돌아온 후에야 휴대폰이 고장 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아무리 적응을 해도 외국인이라는, 이 나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다. 한국에서는 느낄 필요가 없어 몰랐던, 그래서 처음 느꼈을 때 굉장히 당혹스러웠던 감정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 나라는 내가 아닌 다른 미국 사람을 먼저 보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해졌다.
내게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외국인이었던 미국 생활이었는데, 그 반대로 외지인은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한 번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외로움과 함께 한국에 대한 향수를 더 강하게 느꼈다. 나도 나를 가장 우선순위로 보호해 주는 내 나라에서 살고 싶어졌다. 집에 있어도 집 같지 않은 기분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아 졌다. 이외에도 신청한 지 6개월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던 주 신분증 발급 등의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미국 생활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가끔 상상한다. 미국을 선택하고 비자까지 얻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한국에서의 길고 어두웠던 취준생 기간도 없었을 것이고,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로서 가장 편히 쉴 수 있고 집다운 기분이 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