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아남기:수색 헬기가 머리 위를 맴돌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지만 그리운 그곳

by 열닷새

지난 글 <미국에서 살아남기:눈앞에서 벌어진 차 사고 https://brunch.co.kr/@snr0615/77>에 이어서 LA에서 지내는 동안 직접 겪었던 위험한 상황, 주위 지인이 겪은 사고 등을 마저 풀어내보고자 한다.




수색 헬기가 뜨던 날


미국에서 딱히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한 나는 퇴근 후나 주말에 혼자 마트를 가는 게 낙이었다. 한인 마트를 가서 익숙한 한국 상품들을 구경하고 반찬이나 간식을 사면서 헛헛한 마음을 달랬던 것 같다. 그날은 퇴근 후 매번 가던 곳이 아닌, 집 방향과 정반대인 한인 마트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한국 시간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근무를 시작하신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재난 문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LA에서는 사이렌소리가 BGM이라고 친구들과 농담 삼아 이야기하고, 크게 관련 없는 일로 재난 문자가 울렸던 게 여러 번이니 그날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갑자기 뒤쪽에서부터 '두두두두'하는 헬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지나가던 헬기 중 한 대려니 생각했다. 문제는 그 헬기 소리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소리가 도통 작아지질 않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지나가야 하는데' 싶어서 하늘을 바라보니 글쎄,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지상에 조명을 쏘는 헬기가 내 머리 위에 둥둥 떠있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 휴대폰 재난 문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어떤 범죄자가(무슨 범죄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차량을 훔쳐 LAPD 경찰이 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근처에 있는 건가 싶어서 몸이 굳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는데 다행히 헬기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마트가 근처였기 때문에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쇼핑을 마친 후 우리 회사 뉴스를 찾아보니 절도범은 오후 3시쯤부터 6시 반까지 경찰과 도주극을 벌이다 내가 있던 곳 근처에 차량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속보가 올라와 있었다.




퍽치기


이 일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미국인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러 명의 인턴이 있었다. 그날은 오래간만에 전체 회식을 한 날이었다고 한다. 회식은 한국이었다면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인 한 10시쯤 끝났고 인턴이었던 한 오빠는 집이 근처라 별생각 없이 도보로 귀가했다. 그리고 집 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 그 오빠가 당한 것은 금품을 목적으로 한 일명 '퍽치기'였는데 그 부상 정도가 생각보다 아주 심각했다고 한다. 특히 턱을 매우 크게 다쳐 음식을 먹지 못하는 정도였고 빨대를 꽂은 액체만 겨우 삼킬 수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사장님은 앞으로 저녁에 귀가할 때는 절대 걸어가지 말고 택시를 타고 회사에 청구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고 한다. 다행히 오빠는 그 후로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었다. 내가 사는 동안에도 아시안 혐오 범죄나 금품 갈취 범죄가 종종 발생했는데 주위의 누군가가 겪었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외에도 평소에 자주 가던 역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어 알아보니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러 위험한 일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살면서도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 많았지만 특히 미국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은 그 규모가 다르거나 생전 처음 겪은 일들이어서 그런지 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미국에서의 1년은 매일매일이 자극적이고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토록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텨 낸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오늘따라 오랜만에 떠올린 그 시절이 아주 그리우면서도 한 편으론 그때의 불빛과 사이렌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포근한 부모님의 품과 따뜻한 친구들의 환대가 있는 지금의 잔잔한 생활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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