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주파수를 누가 들어? 제가 그 '누가' 입니다

이별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다

by 열닷새

정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월말 이후로는 LA 생활기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러닝도 꾸준히 해서 드디어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를 처음으로 달성했다. 거의 매 주, 많으면 주에 2번 이상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술을 마시고 있다. 피포페인팅이라는 새로운 취미도 가져서 틈날 때마다 펴놓고 색을 칠한다. 11월부터는 회사 복지중 하나인 멀티캠퍼스를 신청하여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실 100일 전쯤부터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소위 말하는 '찍먹'하고 있었는데 문법적인 설명이 없으니 한계가 느껴져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페인어 자격증 DELE까지 도전하고야 말겠다!


이별 후 혼자가 된 시간을 아픔을 곱씹느라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절대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시간을 보내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런 날이 오다니


마음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다. 그로 인한 눈물은 거의 (아마 근 몇 주 동안은 한 번도) 흘리지 않고 있고 헤어졌던 장소를 지나가도 마음이 조금 씁쓸할 뿐 그마저도 금방 잊어버린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주 그가 떠오르긴 하지만 금세 다른 생각으로 채워지고 다시 들어오고 왔다갔다 한다. 몸이 나를 지키려고 보호해주는 건가 싶어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별 초반에는 영영 그를 못본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그의 40대, 50대, 60대 모습을 평생 모른 채 나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때의 '시절 인연'이었던 거구나 싶다. 이전에는 그에 대한 미련을 손톱 자국이 강하게 남을 만큼 온 힘을 다해 쥐고 있었다면 지금은 달걀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딱 그만큼만 쥐고 있는 기분이다.


주위에서 이야기하는 기간보다 더 오래 아파했기 때문에 이런 날이 올 거라 믿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괜찮아지는 건지 마음만 조급해졌다.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 보니 더디긴 해도 정말 조금씩 좋아졌고 앞으로 더 나아지고 혼자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재회 주파수를 누가 들어?'의 그 '누가' 입니다


그런데 요즘 재회 주파수를 듣는다. 재회 주파수는 들으면 원하는 상대에게 연락이 온다는 후기가 가득해 유명해진 영상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친구들은 웃음이 터지거나 효과가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며 약간은 나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가?' 내지는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고?'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내가 재회 주파수를 듣는 이유는 약간 다르다.


영상 제목처럼 재회를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기 위해 듣는다. 미련이 아예 없다거나 깨끗이 잊었다면 들을 필요도 없었겠지만 나는 일단 그런 상태가 아니다. 며칠 전까지도 기복이 아주 심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연락을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속는 셈치고 재회 주파수를 듣기 시작했는데 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방법이 내 이성을 잡아주고 있다.


연애 전이라거나 이별하기 전에는 나 역시 재회 주파수를 대체 왜 듣는 건지 놀라웠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충동적 선택으로 인한 흑역사를 막아주는 기특한 존재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일정한 박자로 들리는 소리가 잠이 잘 오게 해주는 것도 같고 마음이 차분해지게 해주는 것 같다. 여러모로 일상 생활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안녕하세요? '재회 주파수를 누가 들어?'의 그 '누가' 입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3개월 가까이 운동, 공부, 그림, 독서, 글쓰기부터 비이성적인 방법까지. 혼자 괜찮아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디 조만간 더 나아진 상태로 자신 있게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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